“한 프레임도 고칠 수 없다”
[인터뷰] SBS ‘신의 길 인간의 길’ 제작한 김종일 PD
최근 보수 기독계가 한국 기독교를 본격 조명한 SBS 다큐멘터리
“한 프레임도 고칠 수 없다.”
▲ SBS 김종일 PD
대기획 4부작 ‘신의 길 인간의 길’을 연출한 김종일 조합원한테서 논란 많았던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는 노보 편집위원인 보도국 이주형 조합원이 했습니다.
- 작년에 처음 기획안 올렸을 때 바로 통과가 안 됐다던데?
= 이번에 있었던 소란 같은 것도 예상됐을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개신교인 납치 사건이 일어나 아프간 사태를 집어넣어 기획안을 다시 제출했다. 기획안 통과되는 데 석 달 걸렸다.
- 1부는 ‘다빈치 코드’ 같은 데서도 나온 얘기고, 새로운 게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 다 아는 얘기지만, 한국에선 공개적으로 얘기를 안 해 온 것 아닌가? 교회에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적고, 의심하거나 질문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가 너무 크다.
“새로운 해석 보여주고 싶었다.”
- 1부에서 예수를 신화라고 한 것 아닌가? 신화는 어차피 역사적, 과학적 검증의 대상은 아니지 않나?
= 신화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난 검증을 하지 않았고, 이런 견해가 있다는 걸 소개해 준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의심하거나 질문하는 것을 너무 금기시한다. 그런 믿음이 문자주의(성경 구절을 글자 그대로 믿는 태도)고 근본주의에 가까운 것인데, 모든 문자주의 근본주의 종교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지만, 종교를 통해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인들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신자가 다른 나라는 2-30%밖에 안 되는데 우리나라는 60%가 넘는다. 문자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 즉 이런 해석도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큐에서 소개한 해석은 외국에서는 상식 수준이다.
- 이 프로그램을 보고,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게시판에 기독교인들이 글을 많이 올렸는데, “자신이 갖고 있던 의문들이 조금 해결됐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지금은 인터넷 등을 통해 자료를 얻기가 쉬워졌다. 수동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그런 자료를 이용해서 예수가 누구인지 적극적으로 찾는 능동적인 신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삶의 목표 아닌 삶의 방향”
- ‘신의 길 인간의 길’ 가운데, 인간의 길은 무엇인가?
= 인간은 신의 길을 찾고자 떠나는 사람들이고, 인간의 길이란 신이 던진 메시지를 따라가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은 종교를 목표로 삼고 있다, 천국으로 간다는 목표. 그런데 일부에서는, 신의 메시지는 삶의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신을 향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나침반을 갖고 있으면, 북쪽에서 만나자고 하면 중동에 있는 사람이나 한국에 있는 사람이나 북쪽에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종교를 목표로 정한 사람한테, 이슬람에서 오는 사람은 제 길로 오는 사람이 아니다.
- 기독교 신자인가? 모태(母胎) 신앙이라던데, 어머니는 뭐라시던가?
= 신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애매하다. 어머니가 오실 때만 교회에 가는 편이다. 어머니는 방송을 보시다가 주무셨다고 들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난 하나님 믿으면 되는 거 아니냐? 너도 기도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
“외부에서 문제 삼아 고치는 것은 모욕”
- 방송 전에, 교양PD들을 상대로 시사회를 열었다던데?
= 1부 방송이 6월 29일인데, 이틀 전 금요일에 한기총 사람들이 회사에 왔다. 종합편집을 끝내 테이프를 넘기고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방송 내용을 수정하니 마니, 방송을 내니 마니 하는 얘기까지 있다고 했다. 하도 황당해서, “나 혼자 판단을 못 하겠으니 토요일 아침에 시사를 하자”고 했다. 평PD뿐 아니라 책임PD 들도 왔다. 시사회에서 나는 “불방을 결정하면 받아들이겠지만, 방송 내용은 한 프레임(TV 영상 1초는 30프레임으로 구성)도 수정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미 주조에 테이프를 넘겼는데, 그 전에 내부 지적이 있고 토의가 됐다면 고칠 수 있지만, 외부에서 뭐라 한다고 고친다는 건 PD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시사회에서 '문제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일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큰 도움을 줬다.
- 한 프레임도 자를 수 없다고 했는데, 4부에 반론이 나갔다.
= 위에선 반론 내는 걸 원했고, 나도 반론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반론을 내면, 더는 문제 제기를 안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하나의 신(scene)처럼 처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반론문의 수준을 보면, 반론이 나가도 프로그램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목사들과는 달리, 목사의 말만 듣고 시위에 참석한 평신도들이 자칫 사고를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또, 종교 간 소통을 얘기하면서 반론을 안 내주는 게 문제는 없는지, 4부 시사회에서 반론을 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편집권의 한계 등에 관해 논의 필요”
- 이번 일에 대처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 노조가 정신적으로 굉장히 도움이 됐다.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오게 되면, 회사가 난처한 입장을 전달하게 되고 PD는 굉장히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내 의견과 외부의 의견, 경영진의 의견이 다를 때, 외부의 압력이 강하게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가에 대해 PD나 기자나 공통된 합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절차에 대해 합의하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절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도록. 경영진이나 회사의 의견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선은 어디까지인지, 편집권은 어디까지 주장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
- 프로그램 제작하면서, 어려움은?
= 역시 제작비다. 12개 나라를 취재했는데, 6밀리 카메라로 내가 90% 이상을 찍었다. 한국에서 인터뷰 정도만 ENG로 찍었다. 제작비 여유가 있었으면 가고 싶은 곳도 더 가고, 학자들도 더 다양하게 만났을 수 있었을 것이다.아트 디렉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림이나 CG에서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얻기 위해선, 전체적으로 색의 톤을 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HD에선 색만 갖고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고, 이런 거 때문에 채널이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런 고민을 지금 하지 않으면, 완전히 HD가 됐을 때는 늦는다.
출처 : 미디어스 08년 09월 0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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