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포용정책에 관한 세 가지 오해

프레시안 : 책 제목이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해서>이다. 우선, 포용정책이란 게 뭔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다면.

김근식 : 포용정책의 기조로만 보자면,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서부터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결이 아닌, 평화적으로 서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는 상태에서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포용정책이 본격 시행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이고, 노무현 정부까지 10년 간 실행됐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기본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됐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핵문제로 내내 사이가 안 좋았다. 김대중 정부에 들어가서야 포용정책이 처음으로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시행됐다고 볼 수 있다.
▲ <대북포용정책의 진화를 위하여>(김근식 지음. 한울 펴냄) ⓒ한울
포용정책은 냉전 시대를 종식시켰던, 상대국에 대한 관여의 정책을 뜻한다. 김대중 정부는 관여(engagement)를 '포용'이라고 해석해서 개념상의 논란을 부르기도 했지만 국제정치학에서는 관여정책, 개입정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관여나 개입이라는단어는 정치적으로 쓰기에 부담이 있어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에서는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관여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 상대방과의 관계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 관계의 확대를 통해 상대 국가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김대중 정부 식으로 해석하면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대한민국이 자신감을 갖고 북한과의 화해, 협력, 접촉, 교류, 대화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시키고, 이를 통해 북한을 우리가 바라는 바람직한 방안으로 변화시켜서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남북 철도 연결,개성공단,금강산 관광 등으로 북한과의 접촉점을 늘려나갔다.

프레시안 : 포용정책의 내용과 목적은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았고, 많은 왜곡이 있었다.

김근식 : 내 책의 2장에 소개된 내용은 포용정책에 대한 논란을 다루고 있다. 포용정책에 관한 비판은 여러 가지이지만 크게는 셋으로 정리된다. 첫째, 관계 개선을 통한 변화라는 목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 남북의 관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상호주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이른바 '퍼주기' 논란 같은 게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햇볕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군사력 증강 시도를 막지 못했으니 결국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상대국에 무조건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논리적으로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용정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식 포용정책은 미국이 중국·베트남에 했던 포용과는 다른 맥락이 있다. 분단된 상대방을 대상으로 한 포용이기 때문에 특수한 성격을 띤다. 지구상에서 분단된 국가의 일방이 타방을, 그것도 서로 이질화된 체제에서 포용하는 것은 유례가 없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이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말하자면, 북한에는 미흡하게나마 꾸준히 변화가 진행되어 왔다. 북한 입장에서 남한의 관여는 굉장히 민감한 주제다. 자신의 체제 불안정 때문에 상대국과의 관계 맺기로 인해 급속도로 통일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포용정책이 틀렸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곧바로 성과를 내기가 어렵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상호주의 논란남북의 이질화로 인한 가치 체계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퍼줬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식량을 줬는데 북한은 국군포로를 송환시키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그러나 남측에서 보기에 식량 지원과 포로 송환은 모두 인도주의적 사안이지만, 북한 사람들이 보기에 국군 포로 문제는 그 무엇보다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다. 그에 비해 식량 지원은 같은 민족으로서 해야 할 도리로 본다, 그렇게 가치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상호주의에 입각한 남측의 요구는 북측의 눈으로는 일방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 기계적 상호주는 쉽지 않고, 김대중 정부 시절의 유연한 상호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끝으로 포용정책이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 결과적으로 볼 때 핵 개발을 막지 못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핵 문제는 북미간의 문제이고 남한은 북미간의 핵 협상을 진전·촉진시켜 위기를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걸 포용정책과 연계하는 건 맞지 않다.

또한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팽창에 대한 철저한 봉쇄를 전제로 한 정책이다. 튼튼한 안보와 화해협력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를 유화정책이라 보는 것은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핵을 불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지만 이 때문에 전쟁까지 불사할 수는 없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핵을 없애기 위해 더디고 힘들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지 선제적 군사 행동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남갈등, '소수의 과잉대표'에서 비롯"

프레시안 : 포용정책의 발전적 진화가 필요하다고 책에서 주장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김근식 : 구조적 관여(structural engagement)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포용정책을 포기한 결과 대북정책도 실패하고 포용정책을 펼치던 시절의 남북관계까지 망실시켰다. 대북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한 채 고립무원의 왕따가 됐다. 포용정책이 10년간 진행됐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그걸 뒤집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예상이었다. 내 책은 2013년에 들어설 새로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조언이다. 역진 불가능한, 비가역적인 남북관계의 구조화를 완성해서 정권이 바뀌어도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구조적 관여'다.

프레시안 : 구조화된 포용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김근식 : 한 마디로 남북관계를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장관급 회담이나 남북 경협사업을 법규화해서, 어떤 상황이 와도 합의를 거부하거나 불이행하지 않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발전적 진화'의 또 다른 측면은 북한의 변화와 관련된 것인데 진보 진영에 보내는 메시지의 의미도 있다. 지금까지는 탈냉전 시대를 맞아 남북 사이의 관계 확대에 치중한 게 사실이지만 포용정책이 구조화되면 그 다음은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제 김정은 후계 체제가 시작됐는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조적 개입이 있어야 한다. 식량 지원, 경협 사업, 군사적 신뢰 구축을 할 때 이게 어떻게 북한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인 개입 방편을 궁리해야 한다. 진보 진영도 고민해야할 숙제다.

포용정책이 시작된 지 이미 15년이 지났고, 그 동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김정은 시대라는 북한의 변화, 국내 여론의 변화, 북중관계 강화 등 대외적 변화도 있었다. 다양한 변화를 반영한 발전적 포용정책이 필요하다.

대북 인식과 관련해 일부 극단적 진보 진영의 과도한 친북주의나 수구 진영의 반북 정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반북 세력에게는 애북(愛北)의 관점이, 또 과도한 친북 세력에게는 지북(知北)의 관점이 필요하다. 진보 진영은 주사파냐 아니냐 같은 논쟁은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말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고민하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면 북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변화를 고민하는, 현실적으로 방책으로서의 포용정책을 생각해야 한다.

4장에는 남남갈등에 대해 썼는데, 남남갈등이 격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수가 과잉대표되기 때문이다. 원론적 친북주의자들이 진보의 전체인양 대변되고, 보수도 합리적 보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타도론에 입각해 백두산에 태극기를 꽂자는 이들이 보수의 전부인 것처럼 대표되는 현상이 남남갈등을 심화시킨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