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서사> 호미 바바 편저·류승구 옮김/후마니타스·2만5000원
영어 단어 ‘네이션’(nation)은 19세기 말 뒤로 서구가 중심이 되어 펼쳐낸 근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의 번역을 통해 우리에게도 전해진 이 말은 그동안 국민, 민족, 국가, 국민국가 등 다양한 옮김말로 소개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우리말로 딱 부러지게 옮길 방법이 없다’고 곤란해했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래저래 옮겨보는 국민, 민족, 국민국가 등의 옮김말들은 결국 영어 단어인 ‘네이션’이라 할 수 있는가? 그저 번역이 불가능한 채로 주변부에 남겨진 말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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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인 바바는 같은 인도 출신인 가야트리 스피바크, 팔레스타인 출신인 사이드와 더불어 흔히 ‘탈식민주의 3대 이론가’로 꼽힌다. 영문학자이며 문화연구가인 바바는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 탈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빌려와 자신의 식민주의 연구에 적용해왔다. 혼종성, 모방, 계역성, 양가성 등 난해한 개념어들을 즐겨 쓰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학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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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바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초역사적·본질주의적 개념으로서 훈육적으로 강요되는 내러티브인 ‘국민(국가)’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국민국가가 자기완결적으로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내부와 외부가 경계선 위에서 끊임없이 뒤섞이는 지점에 주목한다. 책을 옮긴 류승구 박사는 “바바는 서구 근대 담론이 상정하는 문화 정체성이 실제로는 내부의 근원적 타자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분열, 그리고 불안을 억압함으로써 얻어지는 내러티브 효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고 정리한다. 훈육적 국가 내러티브를 비판한 바바는 다른 한쪽 영역, 곧 배제되고 억압되고 묻혀버린 소수자들의 개별적이고 지역적인 목소리를 불러낸다. 식민주의로부터의 탈출은 그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내러티브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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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3500원
영화인, 프로게이머, 정보기술 프로그래머, 큐레이터, 파티시에, 소믈리에, 네일아티스트. 열정으로 일하는 직업군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취미와 일의 경계 없이 일하는 ‘행복한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꺼풀 들여다보면 ‘좋아서 한다’라는 이유로 저임금에다 장시간 노동이 정당화되는 곳이다. 이 책은 꿈을 착취당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보고서다. 이름하여 ‘열정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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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인디음악가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책을 읽고 나면 답답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열정 노동의 원인과 실태를 들려주지만 답까지는 제시 못한다. 지은이들은 열정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자임을 자각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사회를 향해서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진다.
“워킹 푸어에 해당하는 빈곤층, 차상위 계층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 막차에 잘못 탑승하여 하우스 푸어라 불리게 된 수백만 가구의 중간층까지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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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에 숨은 ‘시대의 욕망’ | |
1980년대 ‘타는 목마름으로’ 등 민주화 향한 민중들의 욕구 표현 1990년대 ‘나는 야한 여자...’ 등 자기분출·자기계발 욕망 드러내 2000년대 열쇳말은 ‘고독한 개인’ <베스트셀러 30년> 한기호 지음/교보문고·1만8000원 30년 동안 출판계에서 일해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 쓴 <베스트셀러 30년>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또다른 거울인 이 베스트셀러의 흐름과 면면을 정리한 책이다. 교보문고의 30년 베스트셀러 목록을 토대로 해마다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런 독자들의 선택에 담긴 의미가 어떤 것인지 풀어보고 큰 흐름을 잡아나간다. 어느새 ‘역사’가 된 연도별 베스트셀러 책들의 목록에서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꾸었던 꿈을 반추해보게 된다. . . 한 소장은 한발 더 나가 “베스트셀러는 시대를 앞서간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가 탁월한 사상적 비전을 제시하든 혹은 은밀한 욕망을 반영하든 현실보다 앞서간다는 것이다. . . 한 소장은 수많은 사건 가운데 우리 출판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금서 해제와 출판사 설립 붐을 가져온 1987년 6월 항쟁 △국가부도 위기에 빠졌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 △동아시아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위기임을 증명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3가지를 꼽았다. 이 세 사건을 겪으면서 대중의 욕망은 현실개혁에서 자기계발로 그리고 희망 없음으로 급변했고 베스트셀러들은 이런 변화를 포착해 왔다. Fr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