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기록한 책 100권

한겨레 신문 선정 20세기의 명저 100선 (1999)




출처 : 한겨레 1999-12-31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성의 정치학'까지한 세기가 저문다.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격랑의 연속이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컴퓨터 혁명을 낳았고, 이 혁명의 적자인 인터넷은 지구촌을 촘촘한 그물로 뒤덮었다. 과학기술의 어두운 면도 남김없이 드러났다. 대량살상무기 앞에서 인류는 종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파시즘의 발호는 '이성의 인간'을 잔인한 살육의 짐승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사회주의 실험은 한때 인류의 희망이었으나, 한 세기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는 중에도 인간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성하고 모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모든 기억은 책으로 남았다. 책은 인류의 희망과 절망, 열정과 좌절을 고스란히 문자로 담았다. (한겨레) 문화부는 지난 한 세기를 특징짓는 책 100권을 골라 소략하게 한 시대를 스케치한다. 책 선정은 영국의 서평지 (로고스), 일간지 (더 타임스) (뉴욕타임스), 국내 서평지 (출판저널) 등의 도움을 받아 자체 기준을 더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편집자)

문학

세기의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영화와 컴퓨터 등에 밀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20세기 전체를 놓고 볼 때 문학은 역시 주도적인 장르였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등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도 역작이 나왔지만, 특히 영국과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주요한 작품이 출현했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엘리엇의 (황무지), 그리고 울프의 (등대로)와 함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창작 방법을 시대의 주류로 만들었다.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과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성이라는 주제를 세기의 화두로 부각시켰으며,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라이트의 (토박이), 아체베의 (무너져 내린다)는 저항문학의 전통을 이어 갔다. 카프카의 (심판)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카뮈의 (이방인) 등이 삶의 부조리에 눈을 돌렸다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오웰의 (1984년)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말로의 (인간의 조건),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조지프 헬러의 (캐치 22)는 20세기가 무엇보다도 전쟁의 세기였으며, 20세기 인간의 조건은 전쟁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였음을 웅변했다.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는 테네시 윌리엄스나 아서 밀러의 작품들과 함께 영어 희곡의 르네상스를 일구었으며, 만의 (마의 산)과 그라스의 (양철북),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와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는 각각 독일과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계승했다.

케루악의 (길 위에서)가 히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을 알렸다면, 루쉰의 (아큐정전)과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루슈디의 (악마의 시)는 '변방'의 목소리를 '중심'을 향해 타전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념과 독점적 진리의 해체라는 세기말 시대정신의 소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문 20세기 인류의 정신은 프로이트와 함께 열렸다. 1900년 태어난 (꿈의 해석)은 인간이 의식의 존재임과 동시에 무의식의 존재임을 '폭로'했다. 프로이트의 표현으로는, 의식이란 기껏해야 무의식의 바다에 떠 있는 섬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안에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또다른 자기가 있다는 깨달음은 인류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성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프로이트는 생략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는 거대한 폭약을 내장한 지적 폭발물이었다. 언어가 기표와 기의의 임의적인 결합일 뿐이라는 지적, 기표들의 자율적인 체계야말로 언어의 본질이라는 지적은 언어학을 넘어 인문학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는 소쉬르를 태반으로 삼아 자라난 20세기적 사유의 한 정점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인류학의 영역에서 '구조'를 드러낸 본격 저작이었다. 구조주의적 사유의 물결은 푸코의 (말과 사물)로, 푸코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라고 토로하게 만든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티 오이디푸스)로 이어졌다.

프랑스에서 '구조주의'가 잉태될 무렵 독일에서 후설은 '현상학'을 탄생시켰다. 현상학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통해 실존주의라는 또다른 20세기적 풍경을 착색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으로 이어졌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은 비판이론의 토양에서 자란 다채로운 꽃이었다. 그 한편에서 루카치는 사회주의 혁명의 열정으로 (역사와 계급의식)을 썼고, 포퍼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대항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썼으며, 보부아르는 (제2의 성)으로 여성해방의 횃불을 올렸다. 서양이 이렇게 격동할 때 동양에선 펑유란이 (중국철학사)를, 라다크리슈난이 (인도철학사)를 각각 지성의 전당에 들였다.

사회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은 20세기 사건의 맨 윗자리에 놓일 격변이다. 그 선두에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 있었다. 그가 32살에 내놓은 (무엇을 할 것인가)는 혁명가라면 놓아선 안 될 필독서였다. 그람시는 감옥 안에서 쓴 (옥중수고)로 자본주의 국가체제가 안정된 상황에서 혁명의 가능성과 방략을 제시했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자본축적의 정신적 동력을 발견한((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는 위기를 겪었으나 수정주의라는 형태로 살아남아 번창했다. 케인스의 (고용.이자.화폐 일반이론)은 그 계기가 된 저작이었다. 그보다 먼저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은 자본주의적 노동통제 방법을 과학의 이름으로 제출했다. 자본주의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내부의 모순을 완화시키려 했다 (베버리지의 (사회보험과 관련 사업)).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에 이르러 여성해방의 목소리는 한층 날카로워졌고, 킨지의 (남성의 성행위)는 음지의 성을 양지로 끌어냈다.

과학ㆍ예술ㆍ기타

20세기만큼 과학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혁명의 중심이자 극점이었다. (상대성 원리)는 250년간 부동의 진리였던 뉴턴의 역학적 세계관을 뒤엎었다. 시간과 공간은 더이상 불변의 좌표가 되지 못했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적 세계관의 단절적 변화를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에 담아냈다. 러브록의 (가이아)는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의 힘을 받아 과학의 영역으로 입장했다. 호킹은 (시간과 역사)에서 천체물리학의 최신이론을 소개했다.

20세기는 간간이 위인을 낳기도 했다. 현대의 성자 간디는 (자서전)에서 비폭력과 관용의 정신을, 말콤 엑스는 이슬람교에 기반한 흑인해방의 이념을, 남아공의 흑인 영웅 만델라는 피부색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설파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장차 유럽을 피로 물들일 광기의 집념을 피력했다.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서양의 예술 역사를 알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최재봉 고명섭 기자 bong@hani.co.kr  



I. 문학

1. 로렌스 (D.H. Lawrence),『아들과 연인』(1913)
2. 루쉰 (魯迅, 1881~1936),『아Q정전』(阿Q正傳, 1921)
3. T.S. 엘리어트 (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황무지』(The Wasted Land, 1922)
4.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1882~1941),『율리시스』(1922)
5.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1955),『마의 산』(Der Zauberberg / The Magic Mountain, 1924)
6. 프란츠 카프카,『심판』(1925)
7.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In Search of Lost Times, 1913~1927)
8. 버지니아 울프,『등대로』(1927)
9. 헤밍웨이,『무기여 잘있거라』(1929)
10. 레 마르크,『서부전선 이상없다』(1929)
11. 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1932)
12. 앙드레 말로 (Andre Malraux, 1901~1976),『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 1933)
13. 존 스타인벡,『분노의 포도』(1939)
14. 리처드 라이트,『토박이』(1940)
15. 브레히트,『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41)
16. 카뮈,『이방인』(1942)
17. 조지 오웰,『1984』(1948)
18.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 1906~1986),『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3)
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롤리타』(1955)
20. 유진 오닐,『밤으로의 긴 여로』(1956)
21. 잭 케루악,『길 위에서』(1957)
22.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1957)
23. 치누아 아체베,『무너져 내린다』(1958)
24. 귄터 그라스 (Gunter Grass, 1927~ ),『양철북』(Die Blechtrommel, The Tin Drum, 1959)
25. 조지프 헬러,『캐치 22』(1961)
26. 솔제니친,『수용소 군도』(1962)
27. 마르께스 (Gabriel Garcia Marquez, 1928~ ),『백년 동안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 1967)
28.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1980)
29.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
30. 살만 루쉬디,『악마의 시』(1989)



II. 인문

1.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꿈의 해석』(Interpretation of Dreams, 1899)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Saussure),『일반 언어학 강의』(1916)
3. 막스 베버 (Max Weber, 1864~1920),『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4~1905)
4. 라다크리슈난,『인도철학사』(1923~1927)
5. 지외르지 루카치,『역사와 계급의식』(1923)
6.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 Sein und Zeit, 1927)
7. 풍우란,『중국철학사』(1930)
8. 아놀드 토인비,『역사의 연구』(1931~1964)
9. 마오쩌둥,『모순론』(1937)
1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이성과 혁명』(1941)
11. 장 폴 사르트르,『존재와 무』(1943)
12. 칼 포퍼,『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
13. 아도르노ㆍ호르크하이머,『계몽의 변증법』(1947)
14. 시몬 드 보봐르,『제2의 성』(1949)
15. 한나 아렌트,『전체주의의 기원』(1951)
1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1953)
17. 미르치아 엘리아데,『성과 속』(1957)
18. E.H. 카,『역사란 무엇인가』(1961)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야생의 사고』(1962)
20.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1917~ ),『혁명의 시대』(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1962)
21. 에드문트 후설,『현상학의 이념』(1964)
22. 미셸 푸코,『말과 사물』(1966)
23. 노엄 촘스키,『언어와 정신』(1968)
24.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 1901~1976),『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d Ganze, 1969)
25. 질 들뢰즈ㆍ펠릭스 가타리,『앙티 오이디푸스』(1972)
26. 에리히 프롬,『소유냐 존재냐』(1976)
27. 에드워드 사이드,『오리엔탈리즘』(1978)
28.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물질문명과 자본주의』(Civilization and Capitalism, 15th~18th Centuries /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15e~18e Siede, 1979)
29.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1979)
30. 위르겐 하버마스,『소통행위이론』(1981)



III. 사회

1.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무엇을 할 것인가』(1902)
2.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과학적 관리법』(1911)
3. 안토니오 그람시,『옥중수고』(1926~1937)
4. 라인홀트 니버,『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
5.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용ㆍ이자ㆍ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
6. 윌리엄 베버리지,『사회보험과 관련 사업』(1942)
7. 앙리 조르주 르페브르,『현대세계의 일상성』(1947)
8. 알프레드 킨제이,『남성의 성행위』(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 1948)
9. 데이비드 리스먼,『고독한 군중』(1950)
10. 슘페터 (Schumpeter, 1883~1950),『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1. 존 갤브레이스,『미국의 자본주의』(1951)
12. 다니얼 벨,『이데올로기의 종언』(1960)
13. 에드워드 톰슨 (Edward Thompson, 1924~1993),『영국 노동계급의 형성』(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1963)
14. 마루야마 마사오,『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1964)
15. 마샬 맥루한 (Marshall Mcluhan, 1911~1980),『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1964)
16. 케이트 밀레트,『성의 정치학』(1970)
17. 롤즈 (John Rawls, 1921~2002),『정의론』(A Theory of Justice, 1971)
18. 임마누엘 월러스틴,『세계체제론』(1976)
19.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1980)
20. 폴 케네디,『강대국의 흥망』(1987)



IV. 과학
1. 알버트 아인슈타인,『상대성 원리』(1918)
2. 노버트 비너,『사이버네틱스』(1948)
3. 조지프 니덤,『중국의 과학과 문명』(1954)
4. 토마스 쿤 (Thomas Kuhn, 1922~1996),『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5. 제임스 워트슨,『유전자의 분자생물학』(1965)
6. 제임스 러브록,『가이아』(1978)
7. 에드워드 윌슨,『사회생물학』(1980)
8. 칼 세이건,『코스모스』(1980)
9. 일리야 프리고진,『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0. 스티븐 호킹,『시간의 역사』(1988)



V. 예술ㆍ기타

1. 헬렌 켈러,『자서전』(1903)
2. 아돌프 히틀러,『나의 투쟁』(1926)
3. 간디 (Gandhi, 1869~1948),『간디 자서전: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1927, 1929)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1927, 1929)
4. 에드거 스노우,『중국의 붉은 별』(1937)
5. 아놀드 하우저 (Arnold Hauser, 1892~1978),『문학과 예술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Art /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 1951)
6. 안네 프랑크,『안네의 일기』(1947)
7. 곰브리치,『서양미술사』(1948)
8. 말콤 엑스,『자서전』(1966)
9. 에른스트 슈마허,『작은 것이 아름답다』(1975)
10. 넬슨 만델라,『자유를 향한 긴 여정』(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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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11.04.29

<해방일기1> 김기협 지음/너머북스ㆍ2만1000원


<해방일기>는 인문학자가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보통사람의 ‘상식’에 근거한 목소리를 통해 해방 정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그 목소리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의 정치에까지 울림이 연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해방 정국을 통해 저자가 찾아낸 것은 오늘의 비이성적인 정치의 기원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극단적 모습만이 보이는 오늘의 정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이름하에 해방정국을 이끌어갔던 비정상적인 극우, 극좌 집단의 문제를 짚어냈다.

그렇다면 이들의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그 하나는 승리 지상주의였다.

또다른 하나는 모험주의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현실을 무시한다.

저자는 1945년 8월1일부터 10월29일까지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고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전환기에 있었던 1945년 8월 15일을 전후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을 ‘상식’의 선에서, 그리고 ‘중도파’의 입장에서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기존의 한국 현대사 연구를 인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풀어내고 있다.


역사학자는 과거 역사를 복원하고, 그 의미를 현실의 문제의식 속에서 끌어내 주어야 한다. 저자는 역사학자가 해야 하는 과제가 무엇인가를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이 책이 각주도 없고, 세밀한 분석도 없다고 혹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각주도 많고, 어려운 용어도 많은 책들이 대중을 역사로부터 멀리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저자는 새로운 역사 쓰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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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와 함께] 역사학자 김기협 교수



역사학자 김기협(61) 전 계명대 교수의 <해방일기>는 1945년 8월1일부터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까지 3년 1개월의 역사를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김 교수는 65년 전 당시 하루하루 벌어졌던 일을 당시 사람의 눈으로 1인칭 화법으로 기록하는 새로운 역사 서술방식에 도전했다. 이번 1권을 시작으로 해방 정국 3년 동안 매일의 역사를 2013년 8월까지 같은 시간 흐름으로 정리해 모두 10권으로 펴낼 계획이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역사학자였던 김성칠(1913~1951) 선생이다. 아버지의 책 <역사 앞에서>는 사학자로서 겪은 한국전쟁을 기록한 일기로, 해방에서 6·25로 넘어가던 시기를 생생하게 보여줘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김 교수는 아버지의 일기에서 일기로 역사를 쓰는 새로운 서술 방식의 단초를 얻었다.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는 1권 부제의 의미는?

“꽤 알려진 표현인데 정작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해방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느닷없이 왔다’는 인식에서 우리 사회 지도층, 지식인층의 비겁성이 출발했다. 해방 전에 이미 일본이 패전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올 것에 대비해 논의를 시작했던 이가 여운형과 안재홍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건준을 만들었다. 종전 전에 그런 말을 못한 이들에 대해 비겁하다고 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친일했던 지도층, 지식인들이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는 식의 변명을 하는 것은 상식적 차원에서 심한 문제다. 그건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일제 때 행적을 반성했던 고 이항녕 선생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실정이다. 눈치만 보면서 그 정도 반성도 안하고 넘어간 것,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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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위정훈 옮김/프로메테우스 출판·1만8천원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나자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전문 지식을 뽐냈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은 이론을 ‘빠삭’하게 알고 있을 뿐, 정작 문제가 된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즉 전세계의 대학이나 연구소의 핵물리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이 내진설계를 했는지,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모래는 염분을 완전히 제거했는지, 각종 부품의 열화가 제대로 관리되고 보수되어 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이를테면 전문가란 자료가 주어져야만 비로소 현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전문가에게 자료를 주는 사람은 현장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다. 게다가 자료를 받은 전문가들은 권력과 독점 기업의 녹을 먹어온 언론인이거나 대학교수이기 십상이다. 반면 “전혀 정보가 없는데요”라는 말을 천연덕스레 하는 기자를 가장 경멸한다는 히로세는 점멸된 단서와 은닉된 자료를 찾아 꿰는, 진짜 전문가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에 광우병 전문가가 어디 있느냐?’던 누군가의 말이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원자력 산업뿐 아니라, 모든 권력가와 독점 기업가는 서로간의 결탁과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 문제를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그렇다. 히로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전쟁을 복잡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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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벌어진 전쟁을 분석한 끝에, 지은이는 전쟁이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지 결코 인간의 본능도 아니요, 정상적인 활동도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현대의 전쟁은 군수산업의 후원을 받거나 그 이해 당사자들인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전쟁을 벌이기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손에 ‘민족분쟁’이란 화기가 들어 있는 이상, 민중들은 그들의 선동에 쉽게 휘둘린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자기의 군사적 행동을 옹호하는 설’은 모두 ‘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군사 선동이다. 이런 설을 말하는 이가 접근해 온다면, 그 사람이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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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시여행> 이병학 글·사진/컬처그라퍼 펴냄·1만5000원


그가 하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 유서 깊은 도시를 고른다. 세상에 유례없는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읍, 면 이상이면 전국 어디라도 대상이 된다. 우선 떠오르는 게 ‘주’(州)자 돌림 도시. 그곳에는 목사가 머물던 숙소, 아니면 감영 문루, 그도 아니면 세월만큼 눈총을 받아온 선정비들, 그것도 아니면 그 앞에서 수백년 현장을 지켜본 느티나무가 있을 터. 지도를 보고 대략 대여섯 군데를 찍은 다음 현지에서 문화원이나 향토사학자, 지역문화운동가, 문화유산해설사 등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인 이동경로를 짠다.

큼직한 지역유산들 사잇길은 구부정하거나 구불구불하다. 일제 때 뚫은 신작로거나 지형대로 난 골목길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선택한 경로가 요즘의 직선길이라면 다른 여지가 없을 때다. 그러하니 중로에는 옛 병사들이 놀았을 법한 돌 윷판, 가구점으로 변한 1930~40년대 일식 이층집, 지금은 비어버린 60~70년대 함석지붕 천주교회, 땟국에 전 돼지국밥집 등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한테서는 옛 지명, 옛 모습, 옛 풍습, 옛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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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존 배로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1만8000원

이 책은 누구에게나 호기심의 대상이 됐거나 될만한 ‘무한’을 다룬다. 우주엔 끝이 있을까, 끝 너머로 던진 돌은 어디로 갈까? 시간은 영원히 무한히 이어질까? 무한에 1을 더하면 무한보다 1이 더 많을까? 물질을 무한히 쪼갠다면 무엇이 남을까? 무한의 이야기와 역설은 널려 있다. 보통사람의 호기심에도, 또 수학·물리학자의 진지한 논문에서도 무한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존 배로는 인류 역사와 현대 과학에서 얘기되는 무한에 관한 수학, 물리학, 우주론, 철학, 신학과 공상소설의 이야기들을 책 한 권에다 읽기 좋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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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무한의 상상을 확장해보자. 존 배로는 무한의 사고실험들을 여럿 소개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가시적인 우주’일 뿐이며 무한한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0이 아니라면, 무한히 많은 생명체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무한한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면, 거기엔 나와 같은 복사본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실험도 있다. 무한한 우주에는 무한한 선행이나 무한한 악행이 있을 터인데, 내가 선행이나 악행 하나를 보탠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설사 그렇더라도 현실세계는 “광속의 유한성”에 놓여 있기 때문에 무한한 복사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논증한다. 또 그렇기에 여전히 개별 도덕은 중요하고 나와 인류는 가치 있다는 ‘무한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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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다니엘 지라르댕ㆍ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미메시스ㆍ3만9000원


사진은 탄생부터 논쟁이었다. 1839년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이 원조라고 주장했지만 니엡스 등 다른 선두주자의 사진이 먼저 세상에 선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새로운 장르는 이후 여러 논쟁을 거치며 성장해왔다. 새 책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정진국 옮김)는 제목 그대로 사진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렀던 ‘문제적 사진’ 73장을 골라 소개한다. 사진이 예술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부터 시작해 저작권, 초상권, 아동 나체, 포르노, 사진가의 윤리, 사진 조작 등 지금까지 계속되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논쟁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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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 수 없는 불’ 원전 신화는 무너졌다

일 후쿠시마 원전 사태서 보듯 100% 안전한 처리법 존재 안해
천문학적 비용에 경제성도 낮아 소비자 중심 사회적 공론화 제안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김수진·오수길·이유진 등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빨간불을 끄는 기술은 아직도 없습니다. 그리고 고준위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여전히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못합니다.”

“결국은 수명이 아주 긴 방사능이 남게 됩니다.…100만년이 지나도 아직 1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불, 끌 수 없는 불, 독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만든 불이라면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어야죠. 원자력의 불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점짜리 기술입니다.”


원전 보유국들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한국도 고리1호기가 가동된 이후 2009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지해야 할 정도의 사고가 423건이나 된다. 2007년에만 12회 가동 중지로 인한 손실액이 49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2007년 6월로 정상수명 30년을 넘긴 고리1호기는 ‘수명 연장’ 판정을 받고 계속 가동중이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들이 바로 그런 낡은 원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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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2022년까지 12기의 원전을 더 건설해서 2030년께 원전 의존율을 59%까지 끌어올리겠다(현재 35.5%)는 한국(20기 가동으로 원전설비 세계 6위)이나 55기를 가동하면서 11기를 건설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본, 59기 가동에 1기를 추가 건설중인 세계 2위의 원자력대국 프랑스, 향후 20년간 45기 이상의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러시아, 11기 가동에 26기를 추가 건설할 중국, 17기 가동에 10기를 추가 건설할 인도, 104기 가동에 11기 추가 건설을 계획중인 세계 최대 원자력대국 미국 등에선 대체로 국가가 직접 개입하거나 거대 독점업체들이 그 사업을 주도한다. 거기엔 경제외적 요소들이 강하게 개입한다. 이산화탄소 감축의무를 손쉽게 달성하려는 정치적 계산, 표준화된 기성체제와 유착하려는 권력과 관료와 기업 등 주류 이익집단들의 경로의존성이 포함된다.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우라늄 확인매장량은 앞으로 43~79년 정도(2007년 기준) 쓸 수 있는 양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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