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2011.04.23



<국민과 서사> 호미 바바 편저·류승구 옮김/후마니타스·2만5000원

영어 단어 ‘네이션’(nation)은 19세기 말 뒤로 서구가 중심이 되어 펼쳐낸 근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실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의 번역을 통해 우리에게도 전해진 이 말은 그동안 국민, 민족, 국가, 국민국가 등 다양한 옮김말로 소개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우리말로 딱 부러지게 옮길 방법이 없다’고 곤란해했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래저래 옮겨보는 국민, 민족, 국민국가 등의 옮김말들은 결국 영어 단어인 ‘네이션’이라 할 수 있는가? 그저 번역이 불가능한 채로 주변부에 남겨진 말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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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인 바바는 같은 인도 출신인 가야트리 스피바크, 팔레스타인 출신인 사이드와 더불어 흔히 ‘탈식민주의 3대 이론가’로 꼽힌다. 영문학자이며 문화연구가인 바바는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 탈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빌려와 자신의 식민주의 연구에 적용해왔다. 혼종성, 모방, 계역성, 양가성 등 난해한 개념어들을 즐겨 쓰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학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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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바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초역사적·본질주의적 개념으로서 훈육적으로 강요되는 내러티브인 ‘국민(국가)’라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국민국가가 자기완결적으로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내부와 외부가 경계선 위에서 끊임없이 뒤섞이는 지점에 주목한다. 책을 옮긴 류승구 박사는바바는 서구 근대 담론이 상정하는 문화 정체성이 실제로는 내부의 근원적 타자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부정과 분열, 그리고 불안을 억압함으로써 얻어지는 내러티브 효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고 정리한다. 훈육적 국가 내러티브를 비판한 바바는 다른 한쪽 영역, 곧 배제되고 억압되고 묻혀버린 소수자들의 개별적이고 지역적인 목소리를 불러낸다. 식민주의로부터의 탈출은 그들의 목소리가 전하는 내러티브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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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3500원

영화인, 프로게이머, 정보기술 프로그래머, 큐레이터, 파티시에, 소믈리에, 네일아티스트. 열정으로 일하는 직업군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겠다’는 젊은이들이 취미와 일의 경계 없이 일하는 ‘행복한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꺼풀 들여다보면 ‘좋아서 한다’라는 이유로 저임금에다 장시간 노동이 정당화되는 곳이다. 이 책은 꿈을 착취당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보고서다. 이름하여 ‘열정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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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인디음악가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책을 읽고 나면 답답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열정 노동의 원인과 실태를 들려주지만 답까지는 제시 못한다. 지은이들은 열정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자임을 자각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사회를 향해서는 의미심장한 경고를 던진다.


“워킹 푸어에 해당하는 빈곤층, 차상위 계층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 막차에 잘못 탑승하여 하우스 푸어라 불리게 된 수백만 가구의 중간층까지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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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에 숨은 ‘시대의 욕망’
1980년대 ‘타는 목마름으로’ 등 민주화 향한 민중들의 욕구 표현
1990년대 ‘나는 야한 여자...’ 등 자기분출·자기계발 욕망 드러내
2000년대 열쇳말은 ‘고독한 개인’

<베스트셀러 30년>
한기호 지음/교보문고·1만8000원

30년 동안 출판계에서 일해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이 쓴 <베스트셀러 30년>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또다른 거울인 이 베스트셀러의 흐름과 면면을 정리한 책이다. 교보문고의 30년 베스트셀러 목록을 토대로 해마다 어떤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런 독자들의 선택에 담긴 의미가 어떤 것인지 풀어보고 큰 흐름을 잡아나간다. 어느새 ‘역사’가 된 연도별 베스트셀러 책들의 목록에서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꾸었던 꿈을 반추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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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장은 한발 더 나가 “베스트셀러는 시대를 앞서간다”고 말한다. 베스트셀러가 탁월한 사상적 비전을 제시하든 혹은 은밀한 욕망을 반영하든 현실보다 앞서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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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장은 수많은 사건 가운데 우리 출판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금서 해제와 출판사 설립 붐을 가져온 1987년 6월 항쟁 △국가부도 위기에 빠졌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 △동아시아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위기임을 증명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3가지를 꼽았다. 이 세 사건을 겪으면서 대중의 욕망은 현실개혁에서 자기계발로 그리고 희망 없음으로 급변했고 베스트셀러들은 이런 변화를 포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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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11.04.16


»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씨


인지자본주의
조정환 지음/갈무리·2만5000원

노동·자본의 형태변화 등‘
인지적 관점’으로 재구성
조정환씨 10년 연구 집약

<인지자본주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55·사진)씨가 10년 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약하여 결산한 책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에게 주된 사상적 뿌리를 대고 있는 지은이는, 기존의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이론뿐 아니라 인지과학의 성과까지 아울러 현대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을 내놓는다. 노동형태 및 자본형태의 변화, 그리고 노동과 자본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변화라는 거시적 틀 속에 종합하고 각각의 문제들의 위치를 밝혀 사회적 총체의 발전경향을 밝히려는 시도다. 지은이는 이 작업이 “우리 시대에 가능한 혁명의 기원과 형태를 밝히는 작업의 필수적인 전제가 될 것”이라며 이 책과 짝을 이룰 다음 책 <혁명의 세계사>(가제)의 출간까지 예고한다.

인지는 “생명체가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등의 활동에 포함되는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라고 한다. 인지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인지가 여러가지 감각운동 능력을 지닌 신체의 경험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함께 진화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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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68혁명과 신자유주의에 의해 부정됐던 케인스주의적 사회민주주의가 다시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지금의 현상은, 자본주의 속에서 그 어떤 새로운 대안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한다. 지은이는 네그리와 하트의 분석을 빌려, ‘다중의 공통되기’를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더 많은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내지만, 자본은 착취를 위해 그것들을 분할해 통제한다. 사회 전체의 화폐인 금융자본은 노동자의 연기금까지 포함하지만, 착취를 위한 자본가 계급의 공동점유물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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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단과 퇴행, 이명박 정부 3년 백서>
김세균·강정구·장상환·변창흠·노중기·전병유 등 지음/메이데이ㆍ1만8000원




<독단과 퇴행, 이명박 정부 3년 백서>는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교수들이 각자 전공 분야의 현실을 고발하는 비상궐기대회 같은 책이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3대 교수·학술단체가 참여한 대형 기획으로, 정치 사회 노동 경제 문화 언론 사법 등 15개영역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3년 만에 최악 수준의 퇴행이 이뤄졌고, 이런 퇴행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은 단 한 가지, 이명박 정부의 독단 때문임을 각종 자료와 분석으로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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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중 한 명인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그 심정을 책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민주주의의 후퇴나 대미 종속 심화로 인한 국익 훼손, 외교 정책의 실패로 인한 국제 고립, 권력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할 예술과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종교까지 권력의 파트너가 되는 ‘퇴행의 종합선물세트’보다 더 심각한 퇴행은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대한민국이 “물신·탐욕공화국으로 전환”된 점’이라고 지적한다.

외환위기를 맞아 자발적으로 장롱에서 금붙이를 꺼내 나라에 헌납하고, 충남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자 100만명 넘게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서던 국민들이 지금은 “나만이 경쟁에서 이기고 나만이 잘살자”는 소시민으로 바뀌게 되고,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러 부조리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아무런 소통도 없이 강력히 집행”하는 점이야말로 가장 가장 큰 문제라는 비판이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이 책과 같은 ‘기억투쟁’이 필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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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더십-애플을 움직이는 혁명적인 운영체계
제이 엘리엇·윌리엄 사이먼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7000원

그가 말하는 아이리더십은 △밤새 줄서서 사고 싶은 완벽한 제품 △거기에 미친 인재의 선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통합 △모든 소비자가 열광하는 브랜드 만들기 등 네 가지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통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경영학이 만들어질 때부터 거론돼 왔던 것으로 별 비밀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엘리엇이 천방지축 잡스가 카네기나 포드보다 탁월한 경영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은 그와 함께 1980년 제록스 연구소를 다녀오면서부터다. 잡스는 이 연구소에서 개발하던 사용자 친화적인 아이디어에 열광했다. 마우스와 윈도시스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이를 애플에 적용했다. 그는 잡스의 신은 ‘사용자와의 친화’였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은이는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의 일등 기업 삼성전자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삼성전자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해 마니아를 만들어낸 애플과 달리 소비자가 요구하지도 않는 하드웨어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워크맨으로 성공했다 결국 몰락한 소니와 닮았다고 충고했다.(▷애플 전 수석부사장 삼성CEO에 쓴소리…“하드웨어 치중 삼성, 옛 소니와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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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정민 지음/김영사·3만5000원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차 문화는 고려시대까지 성행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쇠락했다고 한다. 중국을 통해 들어오던 차의 보급이 중단되었고, 국내의 차 생산은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조선후기에 부안현감 이운해가 고창 선운사의 찻잎으로 7종의 향차를 만든 뒤 그 방법을 <부풍차향보>(扶風香茶譜)로 남겼고, 이덕리가 <동다기>에서 차 무역을 주장함으로써, 우리의 차 문화가 되살아날 계기를 얻었다.


이 책에는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자료의 원형 사진과 이를 탈초한 원문, 번역문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차 이야기를 읽는 재미와 함께 자료집으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뜻이다. 책의 부록에는 조선후기의 차 문화 활동을 보여주는 연보가 있고, 찾아보기는 서명, 작품명, 인명, 용어를 구분하여 정리했다. 독자를 위한 편집자의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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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

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이정우 지음/길·3만8000원
이정우 교수 대작 3권 중 첫 권
서양철학 중심 반쪽 서술 탈피
‘아시아 세계’ 온전히 자리매김
» 철학자 이정우




철학자 이정우(52·사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가 <세계철학사1-지중해 세계의 철학>을 펴냈다. 전체 3권으로 기획된 대작의 제1권이다. 지은이는 2000년 철학연구공동체인 철학아카데미를 세운 이래 줄곧 철학사 강의를 해 왔는데, 그 강의록이 이 저작의 바탕이 됐다. 전체 3권의 첫 권이라고는 해도, 이 한 권만으로도 200자 원고지 4000장, 840쪽에 이르는 분량이다. 지은이는 앞으로 2년에 한 권씩 ‘아시아 세계의 철학’(제2권)과 ‘근현대 세계의 철학’(제3권)을 펴낼 계획이다. 이 세 권이 모두 출간되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철학사 전체를 포괄하는 저작이 등장하게 된다. 지은이는 초국적 기업 중심의 비인간적 세계화를 넘어 보편성을 지닌 진정한 세계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 과제를 해결할 비전을 찾아내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역으로 음미한 뒤 현재로 돌아오는 거시적인 지적 성찰이 필수적이다. 세계철학사 집필은 과거를 경유해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는 노력인 셈이다.


이 저작은 ‘세계철학사’라는 이름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기획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서구에서 나왔던 세계철학사 저작들은 사실상 서양철학사를 몸통으로 삼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도와 중국의 철학 전통에 지면을 할애하더라도, 서구 철학사의 ‘전사’(前史)로 배치할 뿐이었다. 이런 식의 구도는 옛소련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의 <세계철학사>에서도 반복됐는데, 지은이는 이런 배치가 ‘헤겔적 편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말한다. 헤겔은 <철학사 강의>에서 비서구 지역 철학 전통을 철학사의 전사(프리히스토리)로 보았으며, 그런 전통은 오늘날 탈근대철학의 기수인 들뢰즈 철학에서조차 엿보인다는 것이다. “근대 서구인들에게 비서구 지역들은 반드시 ‘전그리스적’이어야 했다.” 지은이는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 인도와 동아시아 철학 전통을 제2권에서 ‘아시아 세계의 철학’으로 따로 서술한 뒤, 제3권 ‘근현대 세계의 철학’에서 다시 종합할 계획이다.

진정한 세계철학사를 쓴다는 지은이의 의지는 첫 권의 부제 ‘지중해 세계의 철학’에서도 확인된다. 지은이는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에서 서구 중세철학으로 이어지는 통상의 철학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와 오리엔트(중동) 지역을 아우르는 서술 방식을 구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되 소아시아·근동 지역에서 발원한 유대교·기독교 사상,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어받아 중세 서양의 지적 부흥에 이바지한 이슬람 철학을 포괄해 서술하는 것이다. 이들 전체가 지중해 문화권의 자식들인 셈이다. 제1권은 이렇게 서양 중세 철학을 거쳐 르네상스 시기와 근대철학 성립기까지를 다룬다.

그런데 세계철학사를 그리스에서 시작하는 것도 서구적 편견의 소산은 아닐까? 지은이는 그리스에서 철학사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철학’이라는 말도 그리스에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민주정과 철학이야말로 그리스 문명이 인류에게 선사한 두 가지 아름다운 선물이다.” 지은이는 철학이라는 독특한 사유양식이 민주주의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전제군주와 일부 귀족계층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사회에서는 철학이 탄생할 수 없다.” 그리스가 일찍이 민주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 그리스 문명이 바다를 중심으로 한 해양 문명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지로 직접 연결되지 않은, 조그만 나라들로 쪼개진 곳에서는 거대권력이 나타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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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이정우의 철학사를 기다린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첫 저작인 <담론의 공간>(1994년)에서 "기존의 철학사 연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철학사의 기획을 예고했었다. "철학사는 철학적인 원전들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다. (…) 철학사는 이 책들에 부재하는 것, 그 책들의 행간 사이에, 그 여백에 보이지 않게 씌어 있는 것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이런 의미의 철학사가 어떤 형태일지 궁금해 하던 나는 이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그것은 '세계 철학사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전에도 <세계 철학사>라는 책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전의 책들이 "실질적으로 서구 철학사"(7쪽)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책에 참된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 철학사의 지위를 부여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름이 세계 철학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세계 철학사를 세계 철학사가 되게 하는 걸까?

나 역시 제목에 끌려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를 펼쳤다가 동양 철학이 극히 적은 분량으로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다. 그러나 동양 철학사와 서양 철학사에 분량을 대등하게 할애한다 해서 저절로 세계 철학사가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분량의 공정한 배분이 문제라면 새 책을 따로 쓰는 수고를 생략하고 힐쉬베르거의 <서양 철학사>와 풍우란의 <중국 철학사>, 길희성의 <인도 철학사> 등을 한 데 모아서 '세계 철학사 세트'라고 이름 붙이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세계 철학사는 지역별 철학사라는 낱낱의 부분들을 짜깁기한 합성체가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철학사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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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11.04.09

<도시농업-도시농사꾼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 엮음/
들녘·1만 500원


지금까지는 도시인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가는 귀농을 의미했습니다. 아니면 도시 근교에 텃밭을 마련해 주말이나 휴일에 경작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도시를 떠나는 귀농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또 주말마다 꽉막힌 도로는 주말 농부들의 의지를 꺾습니다. 저같아도 그냥 돈주고 사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네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도시농업입니다. 도시 가정이 16.5㎡(5평) 남짓한 자기 텃밭을 지방자치단체나 놀고 있는 땅의 주인에게 빌리는 것, 그게 도시농업의 목표입니다. 5평이면 한겨울을 제외하고 한 가족이 먹을 대부분의 야채를 대부분 수확할 수 있어요(겨울에도 마늘을 심어놓으면 초봄부터 먹을 수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쌀을 빼면 식량자급률이 10% 안되요. 그래서 도시농업은 식량 안보에도 제법 보탬이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농약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도시농업의 미덕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돈이 된다는 거예요. 농작물은 원가의 50%가 인건비고, 나머지도 운송비와 중간 마진이 상당하니까요. 도심에 농장을 만들면 1㎡ 당 3만원의 생산성을 낼 수 있어요. 일반 농촌은 1㎡ 당 1만원대여서 훨씬 더 높은 거죠. 이런 경쟁력 덕분에 일찌감치 도시농업을 시도해온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에선 자발적인 농산물 시장이 생겼어요. 그리고 도시농업 일자리들이 창출되서 노동시장에서 소외되던 노인들과 주부들이 돈을 벌 길도 생겼죠. 나라는 복지비용 부담을 덜고, 시민들은 건강을 덤으로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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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 도시농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도 역시 중남미의 쿠바 아바나다. 체 게바라가 활약했던 혁명의 나라답게 도시농업도 혁명적으로 진행됐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와 지원 세력이던 공산권이 해체된 뒤 소련의 원조가 줄어들면서 90년대 식량 위기를 맞았다. 식량자급률이 50% 아래로 떨어졌지만 국가가 식량을 배급했기 때문에 도시 시민들은 스스로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 그 타개책으로 선택한 것이 도시농업이었다. 쿠바 정부는 ‘아스팔트에도 흙을’이란 구호 아래 도시의 모든 유휴지를 유기농법으로 경작하게 했다. 그 결과 아바나에서 소비되는 식량은 90%가 도시와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며 도시 농업 면적이 여의도의 70배가량인 18만㏊(2002년 기준)에 이른다.

위기에서 시작된 식량재배는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1994년 농산물 거래를 위한 자본주의적인 시장이 만들어졌다. 시장을 부인하던 공산국가에서 잉여농산물 거래를 위한 자발적인 시장을 허용한 것이다. 농업을 시스템과 시장에 맡겨두자고 주장해 농업을 고사 직전으로 몰고가 지원금을 남발하는 자본주의 국가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또 퇴비 생산업자, 화단조성업자, 농업지도자 등 수십만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다. 아바나는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시농업의 1차 목표를 넘어 지속발전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목표에 근접한 도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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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야스카와 주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
/역사비평사·2만3000원
일본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사진)는 ‘일본 근대의 스승’인가 ‘아시아 침략의 사상적 주범’인가?

‘탈아론’ 등 침략전쟁의 사상을 북돋운 원흉으로 비난받지만, 일본에서 후쿠자와는 서양문명의 충격 속에서 일본을 주권적 국민국가로 만들기 위한 정신의 토대를 만든 위대한 사상가로 존경받는다. 최고액권인 만엔짜리 지폐에 그의 얼굴이 담긴 것도 그 때문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시민적 자유주의자의 전형을 보여준 사상가’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모든 글과 발언을 살펴본 지은이는,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후쿠자와를 완전히 잘못 읽었다”며 마루야마가 보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진실을 까발린다. 후쿠자와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재산뿐만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던져도 아깝지 않다” 등 민권에 바탕을 두지 않은 국가주의적 발언을 숱하게 쏟아냈다. ‘천부인권·인부국권’의 논리는 찾아볼 수 없어, 마루야마가 찬탄했던 시민적 자유주의자로서의 모습은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는 “개인의 자유독립과 일신독립을 아울러 달성하는 문명의 본지(本旨)”를 “다음 행보로 남겨두고 훗날 이루게 되리라”고 덧붙여, 국권론에 밀린 민권론을 차후의 과제로 남겨뒀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뒤로 후쿠자와는 ‘힘은 곧 정의’라는 노골적인 현실주의의 입장을 드러내며 일본의 침략을 적극적으로 고취하는 데 나섰다. 자유민권운동에 대한 맹렬한 비판, 중국인을 경멸하는 ‘창창 되놈’ 등 수많았던 아시아 멸시 발언, 조선 침략과 ‘천황 친정’에 대한 노골적인 주장, 언론인으로서 뤼순 학살사건에 대한 보도 은폐 등은 한결같은 침략적 제국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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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건축>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정영희 옮김
/다빈치ㆍ전 2권 각 권 1만8000원


“위대한 건축물을 실감하는 최상의 방법은 그 건물 안에서 잠을 깨는 것이다.”

건축가 찰스 무어의 말이다. 건축책에 등장하는 멋진 집,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을 보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실제 이뤄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직접 가보기조차 쉽지 않은데.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건축 설계못잖게 명건축물을 순례하는 데 열정을 쏟는 이다. 물론 건축가들조차 위대한 건축물에서 잠을 자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는 늘 세계의 건축물을 돌아다니며 가능한 한 잠을 자보고, 잠을 재워주지 않는 곳은 몇차례씩 찾아가 유명 건물을 음미해왔다. 새로 나온 책 <내 마음의 건축>은 그가 이렇게 세계 곳곳의 주요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깨달은 건축의 재미와 의미를 독자들에게 대리 체험해주게 하는 건축답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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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사과하라>
김호·정재승 지음/어크로스·1만4000원


어떻게 사과해야 사람들이 인정하고 용서할까? 저자들은 사과가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충분조건을 제시한다. “미안해”라는 말 뒤에 하지만이나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말 것, 무엇이 미안한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 책임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내가 잘못했어”라고 명확히 표현할 것, 개선의 의지나 보상의사를 표현할 것,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 용서를 청할 것 등이다. 사과할 때 절대 쓰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표현으로는 “상반된 내용을 이어주는 접속부사인 그러나, 조건부 사과, 그리고 수동태 사과”가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사과하면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어떤 식의 사과가 공감을 얻을까 궁금해진다. 이런 유의 호기심은 과학적인 실험 결과가 풀어준다. 먼저, 사과가 피해자의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가설을 의학적으로 측정한 실험을 소개한다. 연구 결과는 “피해자가 흥분하여 혈압이나 심장 박동수가 상승했을 때 적절한 사과를 받게 되면, 빠른 속도로 심장이 정상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는, 사과문 가운데 어디에 가장 오랫동안 시선이 머무는가 하는 실험이다. 소비자들이 문의할 수 있는 소통채널과 개선책 제시에 관심이 집중하는 것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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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2011.04.02

<언어의 감옥에서-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권혁태 옮김/돌베개·2만원



일본 리버럴은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로 자임한다. 정당으로 치면 사민당이나 민주당 왼쪽 세력, 신문으로 치면 중도적 <아사히신문>이 거기에 속할 것이고, 이른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대다수가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스테레오타입화한 일본 우파에 대한 경계심이나 비판의식으로 무장하고 일본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은 뜻밖의 상황과 조우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본 일본인들 대다수는 그들이 간직했던 우파(극우) 이미지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배려하며 합리적이고 양심적이며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우파에 대한 고정관념 위주로 형성된 한국인들의 일본인관은 일거에 무장해제당하기 쉽다. 서 교수는 그렇게 해서 형성된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일본인관은 대체로 부정확하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하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은 사상적으로 끝없이 퇴락해왔다고 본다. 그것이 일본의 비극이다. 중간을 자처하는 리버럴은 우파의 왕당파적 국수주의나 공격적인 국가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들과 같은 일본 ‘국민’으로서 향유하는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자기중심적 ‘국민주의’로 퇴락해갔다. 이 국민주의는 어떤 국면에선 우파의 국수·국가주의와 대립관계를 이루지만 식민지배를 통한 약탈과 노동착취를 통해 축적된 일본 국민의 윤택한 경제생활이나 문화생활, 곧 일본 국민으로서 향유하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외부의 타자(또는 내부 타자인 재일외국인, 곧 ‘비국민’)로부터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우파와 보완관계, 공범관계로 전환한다. 그때 리버럴 다수는 시종 양비론을 앞세우며 방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것이 지난 수십년간 일본 우파의 대두를 결정적으로 도왔다. 외부인들의 눈에는 이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빤히 보이는 우파보다 리버럴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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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으로>
존 티한 지음·박희태 옮김/이음·2만2000원

<신의 이름으로>보다 일찍 나왔으며 이 책에도 언급되고 있는 브루스 링컨의 <거룩한 테러>(돌베개·2005) 역시,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 속에 폭력을 성스러운 의무로 둔갑시키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종교 담론은 비폭력에서 폭력으로 도약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 준다고 논증한다. 이런 면에서 브루스 링컨뿐 아니라 모든 종교학자들은, 종교의 은닉된 폭력성을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안다. 그런데 대개의 기독교 신학자나 르네 지라르와 같은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만은 여타의 유일신교가 내장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강변한다.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어주라’고 했던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존 티한의 주장은 숱한 종교학자들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근거로 삼는 것은 종교학이나 인접한 인문학이 아니라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데 유리하고 합당한 심리적·문화적 사전(事前) 경향을 마음속에 축적시켜 왔는데, 한 집단이 친족 범위를 넘어선 더 큰 사회를 이루려면 반드시 도덕 체계가 필요하다. 도덕은 사회에 필요한 결속과 협동을 장려하고 희생을 보상하며, 배신자와 사기꾼이 생겨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그들을 처벌한다. 인간의 진화에서 도덕은 이처럼 중요하며,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친사회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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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했던 것처럼, 기독교 예외주의들은 이런 논리를 거부한다. 예수가 모든 인종(민족)에게 복음을 개방하고 인류의 희생양이 됨으로써,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물론이고 이기적 유전자의 복사라는 진화의 윤리마저 초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목사의 용렬한 망언이 가르쳐주듯이 기독교 보편주의는 유대인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훨씬 광범위한 외부 집단을 새로 만들어낸다. 유대인에겐 고작 사마리아인이 외부였으나, “기독교 보편주의는 가장 자유롭고 자비로운 상태에서조차 동일화에 대한 강제적 담론을 형성하는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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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
김영두 지음/역사의아침·1만3000원


<퇴계 vs 율곡, 누가 진정한 정치가인가>는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 사상가 퇴계 이황(1501~1570·오른쪽)과 율곡 이이(1536~1584·왼쪽)의 정치사상과 정책방향을 비교해 두 사람의 같음과 다름을 살피는 책이다. 지은이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2004년에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를 펴내 선생과 후학 사이에서 벌어진 조선시대 가장 치열하고 아름다운 철학논쟁을 소개해준 바 있다. 이번 책은 철학담론 자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두 거두가 올린 상소문을 비교해 그들이 자신들의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처방을 내놓았는지 검토한다. 이 책이 다루는 상소문은 퇴계의 <무진육조소>(1568)와 율곡의 <만언봉사>(157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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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육조소>는 퇴계의 처신으로 보면 아주 예외적인 글이다. 국정운영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밝힌 유일한 상소이기 때문이다. ‘무진육조소’란 무진년(선조 1년)에 올린 육조(여섯 항목)의 상소라는 뜻이다. 68살의 노학자가 17살 어린 왕에게 마음을 다하여 올린 글이 이 상소다. 퇴계는 이 글에서 어떻게 하면 국왕이 성군으로서 자격을 갖출 수 있는지 힘주어 이야기한다. 반면에 긴급히 처리해야 할 국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항목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그친다. “국왕이 성군으로 성장한다면 그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퇴계가 임금과 대신과 대간(사간원·사헌부)을 머리, 배·가슴, 눈·귀에 비유해 삼권의 분립과 조화를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임금은 나라의 머리요 대신은 배와 가슴이요 대간은 귀와 눈입니다. 셋은 서로가 있어야 완전해지니 실로 나라가 있는 한 바뀔 수 없는 형세입니다.” 임금이 중심에 서되 선비가 함께 정치를 하는 사림정치의 이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율곡은 성군이 나와 나라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 점에서는 퇴계와 생각이 같았지만, 당대의 문제를 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구체적으로 밝힌다는 점에서 퇴계와 달랐다. <만언봉사>가 율곡의 정치사상과 정책대안을 가장 풍부하고 절실하게 보여주는 글이다. ‘만언’(萬言)은 ‘1만자는 되는 말’을 뜻하며 ‘봉사’(封事)는 ‘밀봉하여 올린 글’을 뜻한다. 할 말이 많아 그렇게 긴 글을 올린 것이다. <만언봉사>는 선조 7년에 쓴 것인데,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는’ 변괴가 일어나자 선조가 널리 조언을 구하는 ‘구언교서’를 내린 데 대한 율곡의 답변이었다. 이 상소에서 율곡은 ‘괴변’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곱 가지 실질’을 거론하고 그 실질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퇴계가 근본을 강조한 것과 다르게, 율곡은 수신(修身)과 안민(安民)을 동시에 강조한다. 임금이 도를 닦고 덕을 쌓는 것과 함께 법령과 제도를 시대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가·개혁가로서 율곡이 확실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었음을 <만언봉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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