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2011.04.29

<해방일기1> 김기협 지음/너머북스ㆍ2만1000원


<해방일기>는 인문학자가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보통사람의 ‘상식’에 근거한 목소리를 통해 해방 정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지만, 정작 그 목소리는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의 정치에까지 울림이 연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해방 정국을 통해 저자가 찾아낸 것은 오늘의 비이성적인 정치의 기원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극단적 모습만이 보이는 오늘의 정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이름하에 해방정국을 이끌어갔던 비정상적인 극우, 극좌 집단의 문제를 짚어냈다.

그렇다면 이들의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그 하나는 승리 지상주의였다.

또다른 하나는 모험주의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현실을 무시한다.

저자는 1945년 8월1일부터 10월29일까지 벌어진 일들을 정리하고 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전환기에 있었던 1945년 8월 15일을 전후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을 ‘상식’의 선에서, 그리고 ‘중도파’의 입장에서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기존의 한국 현대사 연구를 인용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풀어내고 있다.


역사학자는 과거 역사를 복원하고, 그 의미를 현실의 문제의식 속에서 끌어내 주어야 한다. 저자는 역사학자가 해야 하는 과제가 무엇인가를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이 책이 각주도 없고, 세밀한 분석도 없다고 혹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각주도 많고, 어려운 용어도 많은 책들이 대중을 역사로부터 멀리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저자는 새로운 역사 쓰기를 제안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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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와 함께] 역사학자 김기협 교수



역사학자 김기협(61) 전 계명대 교수의 <해방일기>는 1945년 8월1일부터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까지 3년 1개월의 역사를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김 교수는 65년 전 당시 하루하루 벌어졌던 일을 당시 사람의 눈으로 1인칭 화법으로 기록하는 새로운 역사 서술방식에 도전했다. 이번 1권을 시작으로 해방 정국 3년 동안 매일의 역사를 2013년 8월까지 같은 시간 흐름으로 정리해 모두 10권으로 펴낼 계획이다.

김 교수의 아버지는 역사학자였던 김성칠(1913~1951) 선생이다. 아버지의 책 <역사 앞에서>는 사학자로서 겪은 한국전쟁을 기록한 일기로, 해방에서 6·25로 넘어가던 시기를 생생하게 보여줘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김 교수는 아버지의 일기에서 일기로 역사를 쓰는 새로운 서술 방식의 단초를 얻었다.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는 1권 부제의 의미는?

“꽤 알려진 표현인데 정작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해방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느닷없이 왔다’는 인식에서 우리 사회 지도층, 지식인층의 비겁성이 출발했다. 해방 전에 이미 일본이 패전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올 것에 대비해 논의를 시작했던 이가 여운형과 안재홍이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건준을 만들었다. 종전 전에 그런 말을 못한 이들에 대해 비겁하다고 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친일했던 지도층, 지식인들이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는 식의 변명을 하는 것은 상식적 차원에서 심한 문제다. 그건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일제 때 행적을 반성했던 고 이항녕 선생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실정이다. 눈치만 보면서 그 정도 반성도 안하고 넘어간 것,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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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위정훈 옮김/프로메테우스 출판·1만8천원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나자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전문 지식을 뽐냈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은 이론을 ‘빠삭’하게 알고 있을 뿐, 정작 문제가 된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즉 전세계의 대학이나 연구소의 핵물리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이 내진설계를 했는지,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간 모래는 염분을 완전히 제거했는지, 각종 부품의 열화가 제대로 관리되고 보수되어 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이를테면 전문가란 자료가 주어져야만 비로소 현장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전문가에게 자료를 주는 사람은 현장과 관련된 이해 당사자다. 게다가 자료를 받은 전문가들은 권력과 독점 기업의 녹을 먹어온 언론인이거나 대학교수이기 십상이다. 반면 “전혀 정보가 없는데요”라는 말을 천연덕스레 하는 기자를 가장 경멸한다는 히로세는 점멸된 단서와 은닉된 자료를 찾아 꿰는, 진짜 전문가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에 광우병 전문가가 어디 있느냐?’던 누군가의 말이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원자력 산업뿐 아니라, 모든 권력가와 독점 기업가는 서로간의 결탁과 치부를 은폐하기 위해 문제를 복잡하고 추상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그렇다. 히로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전쟁을 복잡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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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벌어진 전쟁을 분석한 끝에, 지은이는 전쟁이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지 결코 인간의 본능도 아니요, 정상적인 활동도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현대의 전쟁은 군수산업의 후원을 받거나 그 이해 당사자들인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전쟁을 벌이기 위해 끊임없이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손에 ‘민족분쟁’이란 화기가 들어 있는 이상, 민중들은 그들의 선동에 쉽게 휘둘린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함으로써 자기의 군사적 행동을 옹호하는 설’은 모두 ‘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군사 선동이다. 이런 설을 말하는 이가 접근해 온다면, 그 사람이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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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시여행> 이병학 글·사진/컬처그라퍼 펴냄·1만5000원


그가 하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 유서 깊은 도시를 고른다. 세상에 유례없는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읍, 면 이상이면 전국 어디라도 대상이 된다. 우선 떠오르는 게 ‘주’(州)자 돌림 도시. 그곳에는 목사가 머물던 숙소, 아니면 감영 문루, 그도 아니면 세월만큼 눈총을 받아온 선정비들, 그것도 아니면 그 앞에서 수백년 현장을 지켜본 느티나무가 있을 터. 지도를 보고 대략 대여섯 군데를 찍은 다음 현지에서 문화원이나 향토사학자, 지역문화운동가, 문화유산해설사 등의 도움을 받아 구체적인 이동경로를 짠다.

큼직한 지역유산들 사잇길은 구부정하거나 구불구불하다. 일제 때 뚫은 신작로거나 지형대로 난 골목길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선택한 경로가 요즘의 직선길이라면 다른 여지가 없을 때다. 그러하니 중로에는 옛 병사들이 놀았을 법한 돌 윷판, 가구점으로 변한 1930~40년대 일식 이층집, 지금은 비어버린 60~70년대 함석지붕 천주교회, 땟국에 전 돼지국밥집 등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한테서는 옛 지명, 옛 모습, 옛 풍습, 옛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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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존 배로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1만8000원

이 책은 누구에게나 호기심의 대상이 됐거나 될만한 ‘무한’을 다룬다. 우주엔 끝이 있을까, 끝 너머로 던진 돌은 어디로 갈까? 시간은 영원히 무한히 이어질까? 무한에 1을 더하면 무한보다 1이 더 많을까? 물질을 무한히 쪼갠다면 무엇이 남을까? 무한의 이야기와 역설은 널려 있다. 보통사람의 호기심에도, 또 수학·물리학자의 진지한 논문에서도 무한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존 배로는 인류 역사와 현대 과학에서 얘기되는 무한에 관한 수학, 물리학, 우주론, 철학, 신학과 공상소설의 이야기들을 책 한 권에다 읽기 좋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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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무한의 상상을 확장해보자. 존 배로는 무한의 사고실험들을 여럿 소개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가시적인 우주’일 뿐이며 무한한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0이 아니라면, 무한히 많은 생명체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무한한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면, 거기엔 나와 같은 복사본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실험도 있다. 무한한 우주에는 무한한 선행이나 무한한 악행이 있을 터인데, 내가 선행이나 악행 하나를 보탠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설사 그렇더라도 현실세계는 “광속의 유한성”에 놓여 있기 때문에 무한한 복사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논증한다. 또 그렇기에 여전히 개별 도덕은 중요하고 나와 인류는 가치 있다는 ‘무한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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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 다니엘 지라르댕ㆍ크리스티앙 피르케르 지음/미메시스ㆍ3만9000원


사진은 탄생부터 논쟁이었다. 1839년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이 원조라고 주장했지만 니엡스 등 다른 선두주자의 사진이 먼저 세상에 선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새로운 장르는 이후 여러 논쟁을 거치며 성장해왔다. 새 책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정진국 옮김)는 제목 그대로 사진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렀던 ‘문제적 사진’ 73장을 골라 소개한다. 사진이 예술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부터 시작해 저작권, 초상권, 아동 나체, 포르노, 사진가의 윤리, 사진 조작 등 지금까지 계속되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논쟁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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