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5천 종에 달하는 발암물질
샌드라 스타인그래버의 책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아카이브 펴냄)은 석면처럼, 우리가 만들고 버렸지만 공기·물·흙·음식에 스며들어 다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여성생태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두꺼운 침묵으로 둘러싸인 암과 환경의 숨은 관계를 고발한다.
통념에 따르면 암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은 유전자와 생활방식이고, 환경은 부차적 요인에 머문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암 발생에서 유전의 영향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또 우리는 생활방식의 개선을 암 예방법의 중심 요소로 다루는 반면, 환경 요인은 하찮은 문제로 취급한다. 이는 암이라는 질환의 원인을 개인 습관과 행동방식의 결과로만 국한해 결국 암 유발 물질의 노출 문제라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간과하게 한다.
“1973~2000년에 소아암은 22% 증가했고 사망률은 45% 감소했다.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구했으나 해마다 암 진단을 받는 아이들의 수는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암에 걸린 원인이 위험한 생활습관 탓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이들은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주는 직장에 다니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많이 숨쉬고 먹고 마시기 때문에 공기, 음식, 물 속에 있는 화학물질이면 무엇이든 고스란히 흡수한다.”(91쪽)
석유화학물질은 빠른 속도로 출현해 그것의 생산·활용·폐기를 감독하는 정부 기능을 집어삼켜 무력화했다. 1976년이 되자 6만2천여 종의 합성화학물질이 상업 외 용도로 사용됐고, 이들 중 몇 개가 발암물질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여전히 8만 종이나 되는 화학물질이 우리 주변을 순환한다고 알려졌지만 그중 철저한 독성 검사를 거친 건 2%뿐이다. 시장에 화학물질을 들여오는 데 아무런 검사도 필요 없었다. 새로운 규제법이 생겼으나 기존 화학물질은 검사에서 면제됐는데, 그 수가 6만2천여 종에 이른다. 유해물질규제법이 1976년 발효된 이후 5개의 화학물질만이 시장에서 추방됐고, 사용금지된 화학물질은 극소수다. 독물학자들은 모든 화학물질의 5~10%가 인간 발암물질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4천~5천 종에 달한다. 국제 독물학 프로그램에서 발암물질로 판명된 300~400종의 화학물질 수를 빼면 우리 주변을 맴도는, 판명되지 않는 다량의 화학물질이 남는다. 2007년 미국 환경보호국은 발암물질로 확인되거나 의심되는 37만8522t의 물질이 우리 주변의 공기·물·흙 속에 배출됐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