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와 식량 낭비
5초에 1명.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아니다. 기아로 숨지는 사람 수다. 2005년 유엔보고서는 전세계에서 5초에 1명씩 기아로 사망하고 있다고 적었다. 7년이 흘렀다. 인류는 부자들의 곳간을 열어 굶주린 세계를 얼마나 먹였을까? 답은 어렵지 않다. 메마른 이들은 더 배고파졌다. 세계의 비참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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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볼 때 기아는 남반구만의 수난이 아니었다. 유럽도 한때 기아로 배를 곯았다. 유대인을 말려 죽이려던 히틀러의 기아 계획과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평균수명과 평균체중을 갉아먹었다. 전후인 1945년에 창설된 유엔이 세계질서의 재건과 더불어 기아와의 투쟁을 목표로 이듬해 식량농업기구(FAO)를 발족시킨 이유다. “식량 생산 농업을 발전시키고 인간들에게 공평하게 식량을 배분”하기 위해 인권선언 제25조에 식량권, 즉 굶주리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기도 했다. 1963년에는 긴급 원조를 담당하는 세계식량계획(WFP)을 만들어 늘어만 가는 재앙에 신속하게 대처하려 했다.
하지만 기아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유엔의 목표는 2015년까지 기아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지만, 기아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수는 점점 증가한다. 농업생산력이 낮은 남반구 국가들의 기아는 항구적이다. 기아는 대물림되고 해충과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재앙은 가속화되고 있다. 기아가 ‘장기 지속’되는 데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무역과 시장의 원칙을 철저하게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수호자들과 기아의 새로운 원흉으로 부상한 바이오연료 및 식량투기꾼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장 지글러는 말한다. “현 시점에서 전세계의 농업은 120억 명 정도는 문제없이 먹일 수 있다. 120억 명이면 현재 지구 인구의 두 배에 해당한다. 그러니 기아는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절대 아니다. 기아로 죽는 아이는 살해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남아도는 식량은 어디로 가는가? 독일의 프리랜서 기자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와 영화감독 발렌틴 투른은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죽는가>에서 환경·식량단체의 추산에 기대 전세계에서 생산한 식량의 3분의 1이 사라지거나 낭비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더욱이 들판이나 바다에서 우리의 식탁까지 이어지는 전반적인 식량사슬을 고려하면, 산업국가 식량 에너지의 손실은 50%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FAO는 2011년 5월 중순 전세계를 대상으로 실시한 식량 손실과 식품 낭비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매년 총 13억t의 식량이 헛되이 버려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총량에 맞먹는다. “유럽에서 버려지는 음식만으로도 전세계의 굶주리는 사람 모두에게 두 끼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저자들의 말이 뼈아프다.
우리는 왜 음식을 존중하는 태도를 상실했을까. 저자들은 식품이 점점 싸지고 다양해졌다는 점과 관련 있다고 강조한다. 식량이 흔하니 귀한 줄 모른다는 뜻이다. 대형마트는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소비를 낳고, 이는 결국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쓰레기 더미로 던져지는 식품도 아주 많다. 구매자에게 늘 동일하고 완벽해 보이는 제품을 선호하는 상인들은 양상추 잎 하나가 뭉개지면 양상추 한 통을 그냥 버리고, 복숭아 하나에 곰팡이가 피면 그 상자 전체를 내버리기도 한다. 상하지 않은 과일과 채소를 골라내는 일을 할 직원을 고용하면 오히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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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친일파는 살아있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
고등교육 과정의 최고 브랜드로 추앙받는 하버드의 위상은 ‘세계 모든 대학의 교황청’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절대적이다. 하버드의 교훈(校訓)은 ‘베리타스’(Veritas), 라틴어로 ‘진리’를 뜻한다. 돈과 권력에 오염되지 않고 오롯이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한 학문의 전당이자, 인류사회의 진보에 기여해온 대학으로 알려진 하버드. 신은정 다큐멘터리 감독의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시대의창 펴냄)은 진리보다는 돈과 권력을 좇느라 여념이 없었던 하버드의 이면과 실체를 파헤친 책이다. 책은 하버드가 미국을 넘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해왔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말한다. “하버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미국과 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1636년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주한 앵글로색슨계 신교도(WASP·와스프)들이 목사 양성을 위해 세운 하버드 역사의 첫 페이지는 마녀사냥으로 얼룩졌다. 19명을 처형한 1692년부터 1년 동안 마녀재판 재판관들은 당시 하버드의 총장과 그 졸업생들이었다. 19세기 중반 ‘노예해방론자들의 천국’이라고 자부하는 하버드 총장들은 노예를 거느리며 살았고, 20세기 초 하버드 학생들은 보스턴 노동자들의 파업 진압에 나섰다. 백인 중심이던 하버드의 학자들은 미국 우생학을 발전시키고, 이것은 독일 나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34년 히틀러의 최측근이 된 하버드 동문 에른스트 한프슈탱글은 하버드 졸업식에 초대돼 칙사 대접을 받았다. 오랫동안 상류층, 백인, 남성을 위한 교육기관이던 하버드에서 흑인과 여학생은 차별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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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버드를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 총장을 포함한 13명(2010년까지 7명)으로 이루어진 제왕적 조직 ‘하버드 법인’이다. 총장은 이사들이 선출하고, 이사는 종신직이다. 회의 내용과 결과를 공개할 의무도 없다. J. P. 모건과 록펠러 가문이 주축인 법인 이사들은 거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업의 중역들이 대부분이다. 골드만삭스 회장, 빌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을 거쳐 시티그룹 회장을 지낸 로버트 루빈도 그중 하나다.
저자가 찍은 독립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을 바탕으로 쓴 이 책 속, 하버드의 모습에서 서울대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쁜 의미에서 서울대는 한국의 하버드였다. 조지 버나드 쇼가 “만약 하버드가 개교 300주년을 기념해 학교를 완전히 불태워버리고 그 자리에 소금을 뿌려 다시는 하버드대학이 생기지 못하게 한다면 그 기념식은 나에게 가장 강렬한 만족을 줄 것”이라고 냉소했지만, 명문 하버드를 향한 열망은 여전히 뜨겁다. 2010년 하버드에 입학한 한국 학생들은 300여 명으로, 캐나다와 중국에 이어 3위를 달린다. 세계 대학들의 대학인 하버드가 지배계급에 의한, 지배계급을 위한 ‘고등교육의 크렘린’으로 불리는 까닭을 우리가 알아야 할 이유다.
<중국인 이야기 1>
류사오치와 린뱌오 등 혁명 주역의 오욕의 인생에서 시작한 <중국인 이야기 1>은 이처럼 파란만장한 20세기 중국 근현대사를 다룬다. 2016년까지 4년에 걸쳐 총 10권 완간을 목표로 한 장정의 첫발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이 책은 ‘중국판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가 될 것 같다. 책 곳곳에 혁명가·지식인들의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이 생생한 까닭이다. 다음은 그 예다.
1955년 한 농부가 참새를 탓하는 탄원을 하자, 마오는 전국적인 참새 섬멸 작전을 명했다. 1958년에만 참새 2억1천만 마리가 살해됐는데, 그 이듬해 해충이 창궐했다. 마오는 다시 참새를 ‘복권’시킨다. 참새 박멸에 열 올린 아이들은 10년 뒤 홍위병 완장을 찼다. 참새와의 전쟁은 문혁의 전초전이었다. 한편, 홍위병 완장을 차고 ‘마오 만세’를 외친 저우언라이는 평생 마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천수를 누렸다. 저자는 문혁이 더 오래갔던 이유가 저우언라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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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사람 얘기를 위해 저자는 1980년대부터 중국·대만·홍콩 등 현지의 골동품 가게를 돌며 일기·서한·회고록·사진 등을 수집했다. 저자는 진짜 중국사는 사건보다 사람에 담겨 있다는 쪽인듯 싶다. 중국인들의 ‘뒷담화’까지 알뜰하게 긁어모아 중국 근현대의 주요 인물들을 자기 방식으로 재현·평가했다. 마오와 저우언라이를 좋아한 독자라면 저자의 평가가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 책에 담긴 저자의 이야기가 각주없이 너무 내밀한 탓이다. 풍부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건져올릴지는 결국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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