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언론개혁 해법 ①교과서부터 바꾸자


언론개혁,교과서부터 바꾸자 


친일행적 신문을 항일 민족지로
한국판 교과서 왜곡
중.고 역사책“민족신문인 조선.동아”
94년 개편논의 색깔공세로 무산시켜
“조선.동아 친일 기술해야
민족지 표현도 고칠 필요”

교사등 재수정운동 꿈틀

<한겨레>는 기획연재물 `심층해부, 언론권력' 1·2부를 통해 족벌신문들의 `횡포'와 `추악한 과거'를 백일하에 드러냈다. 그러나 족벌신문들은 언론정상화의 도도한 흐름을 틀어막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부에서는 신문이 시민사회 성숙에 봉사하고 민주주의와 국민의 알 권리에 복무하는 참된 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한 구체적 `해법'을 찾아본다.편집자주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을 언론기관의 민족의식을 잘 보여준 사건이라고 쓴 중학교 국사교과서 하권(153쪽·사진 위)과 조선·동아일보가 온갖 박해를 받다 폐간됐다고 쓴 중학교 국사교과서 하권(145쪽). 그러나 교과서는 동아일보보다 10여일 앞서 일장기 말소 사진을 게재했다가 정간당한 뒤 폐간한 <조선중앙일보>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고, 친일에 앞장선 사실도 생략했다.



1.교과서부터 바꾸자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미화한 일본 우익의 역사교과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교과서를 성토하는 대열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신문들은 우리 정부의 미지근한 대응을 질타하며 강력한 대처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내부 또한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친일의 `추악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역사왜곡만 비판하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친일매족을 일삼던 신문들이 자기 반성은 하지 않고 일본 교과서 문제만 떠드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행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친일매족에 앞장선 전력이 있는 일제강점기 신문들이 지금도 항일민족지로 기술돼 있는 사실이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현행 국사교과서에 일제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행위들은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은 채 마치 항일만을 하다가 강제폐간된 것처럼 쓰여 있는 것이다.

문제의 교과서는 1996년 개편이 완료돼 97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중학교 및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하권이다. 이 가운데 중학교 국사교과서 하권 145쪽 하단에는 “민족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실력양성운동에 앞장섰다. …이들 언론의 활동에 대하여 일제는 기사의 검열과 삭제, 휴간 및 정간 등의 갖은 탄압을 가하였다”고 쓰여 있다. 이 내용이 실린 단원은 3·1운동 이후부터 해방이전까지를 다룬 `Ⅵ. 민족의 독립운동 4.국내의 독립운동'이며, 145쪽 상단에는 `조선일보의 문맹퇴치 운동 기사'와 `동아일보의 브나로드 운동 기사'가 사진으로 실려 있다.

또 같은 교과서 152~3쪽에서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의 검열제도에 대항하면서 민족사상의 고취, 민족의사의 대변, 민족문화의 계승, 재난동포의 구호 등 민족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일제의 이와 같은 언론기관의 활동에 대하여 언론인 구속, 신문압수, 발간정지 등의 탄압을 가하였으며, 마침내 1940년경에는 이들 민족신문을 모두 폐간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가 이미 보도한 대로(3월 29일, 30일, 31일 1·3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 말기에 해마다 1월1일 1면을 털어 일왕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싣고 “천황 폐하의 성덕”을 찬양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또 일왕의 생일을 민족의 명절인 양 봉축하는가 하면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제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고 후방의 백성들에게 전쟁물자를 내놓도록 독려하는 친일매족에 앞장섰다. 이들의 폐간도 항일의 결과가 아니라 전시체제하 물자절약 차원이었음도 이미 밝혀졌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민족언론'으로 기술한 것은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국사는 `Ⅲ. 민족의 독립운동 (1)식민지 문화정책' 단원이 실린 하권 172쪽에 “국권 침탈과 함께 한국인의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신문은 모두 폐간되었으나, 3·1운동 이후에는 이른바 문화통치에 의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발행이 허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민족지들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정간·폐간되고 언론인들이 구속되는 등 온갖 박해를 받았다”고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언론학자 김동민 교수(한일장신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무수한 친일매족적 언론행위가 역사적 사실로서 엄존하고 있는데도, 국사교과서마다 두 신문의 친일언론활동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민족지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교과서로 국사를 배운 청소년들이 민족의식을 제대로 가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현행 국사교과서는 개편 당시에도 내용 기술과 관련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조선일보 등 `언론권력'들은 국사교과서 제 6차 개편 준거안이 발표된 1994년 3월 `국사교육 내용전개 준거안 연구위원회'의 일부 집필자들의 사상과 `색깔'을 문제삼으며 개편 준거안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 준거안은 근·현대사 부분에서 “일제가 자행한 민족말살 정책, 일본어 사용 강제, 신사참배 강요, 일본식 성명으로의 개조, 황국신민화 정책 등을 설명하되, 이 과정에서 노골적인 친일세력이 형성됐음을 설명한다”, “일부 민족지도자들이 일제 말 일제의 황국신민화 운동과 침략전쟁에 협력하였음을 간략히 기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 내용대로 국사교과서가 기술됐다면 친일 행위와 관련된 부분이 현재와는 달라졌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준거안에 대해 조선일보는 `대구폭동'을 `10월항쟁'이라고 한 점, `제주 4·3'을 `제주 4·3항쟁'이라고 표기한 점 등을 들어 “대한민국 건국사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이 문제를 `색깔론'으로 비화시켰다. 조선일보의 이런 식의 주장에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동조했다. 이 와중에 친일파를 기술한다는 내용은 흐지부지 사라져 버리고 교과서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해방 후 친일파 단죄를 위한 반민특위의 활동 부분이 간략히 들어간 정도(고등학교 국사 하권 197쪽)가 성과라면 성과다.

94년 당시 준거안 준비위원장이었던 이존희 명예교수(서울시립대)는 “당시 준비위 연구자들이 세미나를 통해, 해방된 지도 오래됐고 하니 이번에 친일파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며 “그런데 `대구폭동' 문제 등으로 보수적인 주장들이 과도하게 부각되면서 친일파 문제는 덮여버리고 말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는 “사회적 분위기가 언론 등을 통해 유도되면 학자들이 편하게 갈 수 없다”며 교과서 개편에 언론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시사했다.

당시 현대사 서술의 준거안을 만든 서중석 교수(성균관대·사학)는 “준거안의 내용 일부가 알려지면서 (언론이) 민주주의 운동이나 독재정권의 헌정문란행위, 친일파 문제 등에 대해서는 꼬투리잡기가 어려워 `10월항쟁' 등을 문제삼아 전반적인 공세를 취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행 국사 교과서가 지닌 문제가 알려지면서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그 하나가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공동대표 김동민·문규현·오종렬·홍근수)다.

곽태영 4월혁명회 조국통일위원장이 17일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조선일보의 친일행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김종수 기자



이 단체는 지난 2일 국사 교과서의 `왜곡서술'과 관련해 `중등학교 국사교과서 일제하 언론관련 부분 수정 요구서'를 지난 2일 교육부 장관 앞으로 제출했다. 이들은 요구서에서 “과거 친일행적으로 해방을 늦추고 민족의식 마비에 일조했다고 평가받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마치 민족지인 듯 교과서에 기술돼 있다”며 “관련부분을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역사교사들도 이런 움직임에 함께 하고 있다. 전국 역사교사 8천여 명 가운데 2천여명이 가입한 전국역사교사모임(대표 정용택)은 현재의 국정교과서와는 별도로 대안 교과서를 집필 중이다.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양정현 교사는 “현행 교과서가 반민족행위자인 친일파 문제를 왜 정면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언급도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친일파 문제를 교과서에 솔직하게 기술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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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나치 부역' 숨김없이 서술


“실로 우리 독일인은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우리들이 지은 죄 앞에 마주 서야 하며 그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죄과에 대한 질문을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던져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깊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답변에 따라, 존재에 대해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의식이 달라질 것이다….”(카를 야스퍼스 <독일의 죄과>(1946))

프랑스 고등학교 교과서는 나치 점령하 프랑스인의 부역행위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은 친나치신문 <르프티파리지앵>의 1940년 10월 26일치. 히틀러와 나치괴뢰정부 수반 페탱의 얼굴을 1면 머리로 올려 그들을 선전하고 있다. 프랑스는 해방 뒤 나치 부역언론인을 철저히 숙청하고 친나치신문들을 폐간시켰다.


일본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 말은 프랑스의 고3 학생을 위한 역사 교과서에 알베르 카뮈의 <쓰라린 승리>(1944)와 함께 실려 있다. 프랑스의 역사가 영예로운 것만은 물론 아니다. 4년 간의 나치 점령 기간 동안 레지스탕스 활동가들도 많이 있었지만 부역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프랑스의 역사 교과서는 콜라보(나치 부역자)들의 부역 행위를 숨기지 않고 레지스탕스와 나란히 기술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역사와 함께 부끄러운 역사를 견주어 보게끔 하는 것이다. 또 비시 정권을 `국가의 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조국을 위해 나치 부역에 앞장서라고 종용했던 당시의 선전 포스터들을 그대로 싣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왜곡하여 기술한다고 그 잘못된 역사가 사라지지 않듯이,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숨긴다고 그 부끄러운 역사가 사라지지 않음은 단순한 진리에 속한다. 전자의 상반되는 예를 일본과 독일이 보여준다면, 후자의 상반되는 예를 한국과 프랑스가 보여주는 게 아닐까. 가령 <기미독립선언문>의 이른바 `민족대표' 33인 중에 변절하지 않은 사람이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는 사실을 우리의 역사 교과서는 제대로 기술하고 있는가? 우리의 역사 인식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친일 부역 행위에 가장 앞장섰던 <조선일보>가 민족 앞에 사죄 한마디 없이 `민족정론지'라고 떠들고 있는 데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신문이 `일등신문'이라고 자랑하는 현실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당연한 분노조차, 보잘 것 없는 역사 인식과 낮은 차원의 쇼비니즘(국수주의)이 만나서 나온 게 아닌지 묻게 한다.

“프랑스인들이 알제리에서 저지른 행위의 증언과 희생에 관한 <르몽드>의 조심스런 보도 태도는 독자들을 서글프게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에겐 거꾸로, 우리에게 반대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반역 행위가 된다. 헤어나기 어려운 곤경이다.”(<르몽드> 1957년 3월13치)

<르몽드>의 창설자 위베르 뵈브-메리의 글이다. 알제리 독립 전쟁이 시작될 무렵, 프랑스의 국가 이성과 지배 여론이라는 압력과 탈식민이라는 세계사적 역사 인식 사이에 처한 `기자의 곤경'을 실토하고 있는 이 신문기사 또한 프랑스의 고3 학생용 역사 교과서에 나와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질렀던 행위에 대해 30년 뒤에 반성을 촉구하며 기사화했던 <한겨레21>과 그 때문에 신문사가 당했던 일을 비교해보면 우리의 역사 인식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인들이 내일 반성하지 않을 오늘을 위해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역사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홍세화/<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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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여, 대선 앞두고 언론문건 작성' 파문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지난 9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언론사 경영진 및 간부의 성향을 파악하는 등 언론을 활용, 장악하기위한 언론대책문건을 작성했다고 월간 `말'지가 폭로, 파문이 일고 있다.이에대해 한나라당은 20일 `괴문건'으로 간주, 정치적 악용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선 반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대해 진상공개를 요구하는 등 여야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말'지가 5월호에서 A4용지 400장분량의 대선기획문건중 일부라며 공개한 언론문건에 따르면 신한국당은 15대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언론사 부장급 이상 간부 및 논설위원, 정치부기자 등을 대상으로 성향과 인적사항을 분류해 데이터베이스화, 언론대책에 활용하는 방안을 기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언론사 경영진 관리수단으로 통합방송법과 공정거래법을 활용하고, 매체별로는 TV의 경우 여권이 분위기를 완전 장악토록 유도하고, 신문은 유력지를 중심으로 비판논조 차단에 주력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대해 한나라당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김기배 사무총장 주재로 열린 당 3역 회의후 브리핑에서 "누가 만들었는지 사실 여부도 확인되지않은 `괴문건'에 대해 전혀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결코 용서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말지에 실린 대권문건 실체에 대해 당내 어느 누구도 확인할 수 있는사람이 없다"면서 "과거 신한국당 선거대책본부에서도 이런 `괴문건'을 일절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당에서 만들었는지 극히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장 부대변인은 "따라서 `말'지는 이런 문건의 출처가 어디인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문건을 입수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면서 "문건 내용을 갖고 과거 대선전 당의 입장이었다는 식으로 몰고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전용학 대변인은 고위당직자회의 브리핑에서 "경악을 금치못한다"면서 한나라당에 대해 문건과 관련한 진상공개를 요구했다.

전 대변인은 "신한국당이 언론을 채찍과 당근으로 끌어들이고 부장급 이상 간부나 정치부기자 등의 성향을 파악해 관리했다는 대선 문건이 보도된데 대해 경악을금치 못한다"면서 "당시 문건을 작성했던 신한국당 의원들이 대부분 속해있는 한나라당에서 자신들이 과거 그같은 (언론)전략을 동원했었다는 사실에 대해 한나라당의 입장을 묻지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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