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정간법 개정


언론사 소유지분 제한해야


△ 정기간행물법 개정을 비롯해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16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신문개혁국민행동'의 출범식 모습이다. 장철규 기자chang21@hani.co.kr 
신문은 상품이다. 빵, 우유, 청소기, 세탁기 등과 다르지 않다. 신문사는 그런 상품을 만드는 사기업이다. 사기업의 소유권은 제한할 수 없다. 신문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좋은 상품을 잘 알아본다, 그러니 시장에 맡겨라 등등.

족벌언론과 이들을 옹호하는 인사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논리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련)와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기협),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에서 신문의 논조를 사주의 입김으로부터 차단하고 편집권을 독립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하고 있는 소유지분 제한에 이르면 이들의 주장은 한층 원색적으로 흐른다.

“소유지분 30% 제한이라는 세계 유례없는 기상천외한 발상 … 이는 전체주의적·집단주의적 발상 … 사주를 무력화시키자는 것은 계급투쟁적 측면이 있습니다.”(남시욱 전 문화일보사 사장, <조선일보> 4월5일치 긴급좌담-신문고시 무엇이 문제인가)

자유기업의 원리를 부정하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얘기다. 또한 `그동안 방송과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으로 여겨져 온 신문은 건전한 사적 영역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언론학계 일부의 주장은 타당성 여부를 떠나 족벌언론의 입맛에 맞게 즐겨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족벌언론은 단지 `정권의 세무조사 의도가 불순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사기업임을 부정한다.

사적 영역에 속해야 하는 사기업인 신문사에 대해 당연히 실시해야 하는 지금의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 `국가권력 남용' `비판 언론 죽이기'로 규정한다. 결국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사기업'임을 강조하고 때로는 사기업에 당연히 적용돼야 하는 규제가 부당하다고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소유지분 제한의 위법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족벌언론이 즐겨 기대는 근거는 미국이다. 미국에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행위도 없다며 우리나라와 비교한다. 미국 연방수정헌법 1호는 다음과 같다.
“연방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

그러니 족벌언론에게 사주를 비롯한 특정인과 가족의 소유지분 제한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가 새로 마련하려고 하는 신문고시 역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시에 미국에선 `사기업' 신문에 대한 어떠한 예외조처도 없으며, 강력한 독점금지법이 적용된다는 사실에 우리나라 족벌언론들이 애써 눈을 감는 것은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헌법 제23조에서는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원칙을 들어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변 박형상 변호사는 굳이 신문사 소유제한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헌법 제23조까지 들먹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미국 연방수정헌법 1호는 국가권력을 최소한으로 행사하는 게 좋다는 이른바 `최소국가' 정신에 따른 것이고, 여기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기간행물등록등에관한법률이나 언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언론중재위원회와 같은 기구들도 위헌이다. 반면 우리나라 헌법은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는 사회적 법치국가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헌법 헌법 제21조 1항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3항에서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필요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변호사는 법의 이름으로 신문 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정간법 개정 및 새로운 법률의 제정에 딴죽을 거는 시도에 대해 이렇게 꼬집는다.

“우리나라 법률이나 국회를 끝까지 무시하려면 우리나라 헌법 제21조 3항을 삭제·개정하든가, 아니면 조용히 미국으로 떠나 살아야 한다.”

편집권 독립의 물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사주와 그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소유지분을 일정비율 이하로 제한하자는 근거는 이미 현실에 있다. 바로 은행이다.

현재 국내 내국인의 시중은행 소유한도는 4%(지방은행 15%)이다. 이 한도를 외국인과 역차별을 방지한다는 이유에서 8%로 늘리는 것이 현재 검토되고 있지만, 소유지분 제한과 관련해선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라는 원칙에 따라 존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은행을 공익성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사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뤘음에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라는 원칙에 따른 소유지분 제한만은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언개련·언론노조·기협·민변 등은 신문의 소유지분을 제한하자는 배경은 은행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해 왔다. 족벌언론의 경우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도 사주 1인과 그 친·인척이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한 채 편집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사주의 가치관을 `여론'으로 덧씌우는 폐해는, 산업자본, 특히 총수 1인이 지배하는 재벌이 은행을 장악할 경우 발생하는 `재벌의 사금고화' 등의 부작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족벌언론들이 앞으로 은행의 소유지분 제한 완화에 대해 어떤 식의 보도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거리다. 사주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관련된 이 사안에 대해 이른바 `주인 찾아주기'와 `책임경영'을 내세워 소유지분 제한 완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물론 아예 소유지분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족벌언론들은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고 책임경영을 다그쳐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재벌의 사금고화 방지'라는 사회적 합의를 의식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의 원칙을 거부하지는 못해 왔다.

언론·시민단체 일부에선 30% 소유지분 제한이 이뤄진다고 해도 편집권이 제대로 독립되겠느냐는 회의론을 품고 있기도 하다. 언론학계 일부에선 소유지분 제한 주장이 소유권 침해라는 불필요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편집권 독립을 이루기 위한 실용주의적 `우회로'를 설정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중앙일보>가 2월14일 사주인 홍석현씨가 편집권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노보 공보위원장이 포함된 7인 편집위원회를 구성한다는 발표에 언론·시민단체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편집위원회가 어떻게 운영될지는 여전히 홍씨의 손에 달렸다거나, 소유지분 제한을 피해가기 위한 편법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그 이전까지 중앙일보는 `사주는 편집권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중앙일보의 편집권은 독립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는데, 이번 발표로 사실상 그동안 홍씨가 편집권에 개입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 됐다.

족벌언론들이 신문사의 소유지분 제한 움직임에 독재적 발상이라거나 헌법에 위배된다는 식의 딴죽걸이를 하는 것에 대해 이 조항을 포함한 정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는 언개련 김주언 사무총장은 이렇게 답변한다.

“소유지분 제한에 대해 의견의 다름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담은 정간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동시에 우리는 국회 산하에 언론발전위원회를 꾸려 소유지분 제한 여부를 포함해 언론발전을 위한 모든 사안을 언론계·학계·국회의원 등이 참여해 논의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그것이 독재적 발상인가.”

특별취재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