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경영투명화


언론사 세무조사 공개해야


△ 지난 2월22일 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을 비롯한 언론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 국세청 앞에서 1994년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21@hani.co.kr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종반에 접어들면서 세무조사 공개 여부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언론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세무조사를 철저히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언론사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할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하지만 `언론권력'들은 여전히 언론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정부 내부의 기류도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은 최근 현행 법상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국세청은 언론사에 세무조사를 하고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1994년 <조선일보> <한국방송> 등 10개 언론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였지만 아직까지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당시 `바른언론을 위한 시민연합'이 국세청에 “언론사의 사회적 역할과 공적책임 등에 비추어 언론사의 경영관리에 관한 사항은 국민의 일반적 관심 앞에 공개돼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어 벌어진 행정소송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킴으로 인한 공공의 이익만으로는 사생활의 비밀로서 조세비밀을 침해할 명백하고 우월한 공익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문의 취지였다.

이 소송이 끝나자 국세청은 국세기본법을 개정하면서 이른바 `비밀유지' 조항을 신설했다. 소송 과정에서 과세정보를 비밀로 유지한다는 명문화된 조항이 없어 일어났던 논란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면서 정부가 공개하지 않았던 진짜 속내는 지난 2월9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도쿄 발언으로 드러났다. “세무조사하면 가족관계까지 전부 조사하는 것 아니냐. (재산 등을) 가져서는 안될 사람도 (갖고) 있었다. 국세청이 원칙대로 했다면 상당히 징수해야 했다. 여러 건이 있었다. 그래서 없었다고 할 수는 없고 적당한 수준에서 얼마만 받고 끝내라고 딱 잘라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이유에 대해 “만약 내가 공개했다면 큰일났을 것”이라며 “(언론사들) 존립에 대단히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막을 공개하면 존경심이 무너지고 국민들이 허탈해 할 것 같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이 언론사들의 이런 약점을 쥔 상태에서 세무조사 직후 언론사 사장들을 만나 “정직, 정확하게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이 사장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또 국세청의 문서보존 규정에 어긋나게 당시 깎아준 세금을 부과한 일부 문서 외에는 관련 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권언유착으로 서로의 비리를 감싸주고 서로 이익을 챙겨왔다는 강한 의혹을 불러오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시민 사회단체들은 이번 세무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자문기구인 한국기독교 원로회의 등이 성명을 내 세무조사 결과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또 전국 162개 단체가 참여한 신문개혁국민행동은 세무조사가 끝나는 시점을 전후해 오는 5월 2일부터 국세청 앞에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와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여론도 공개를 지지하고 있다. <한겨레> 여론조사팀이 지난 2월 전국의 성인남녀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 67.1%가 “전부 공개”, 26.2%는 “위법 내용 공개”를 요구했으며, “공개 반대” 의견은 3%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세무조사 결과 공개는 검찰 고발 때를 제외하고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 대통령도 지난 3월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세무조사 결과 공개 의향을 묻는 질문에 “여론조사에서 국민 90% 이상이 공표해야 한다고 나온 것에 정부는 곤혹스럽다. 법과 여론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만 답변했다.

국세기본법의 비밀유지 조항은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세법이 정한 납세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제출한 자료나 국세의 부과 또는 징수를 목적으로 업무상 취득한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국가기관이 조세쟁송 또는 조세범의 소추목적을 위하여 과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등 몇가지 예외규정을 둬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주석 국세청 조사국장은 “국세청은 사법당국에 고발할 경우에만, 고발서 공개 시점에 맞춰 일부 기업의 혐의에 대해 설명해왔을 뿐”이라며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는 결과를 보고 그 공표 여부를 결정할 것이며, 사법당국에 고발할 사실이 있더라도 발표할 지 여부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현행법상으로도 그 결과를 공개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세기본법의 비밀유지 조항은 권력이 과세정보를 남용하거나, 납세자의 정보를 누설해 사적인 이익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이므로 알 권리 차원에서의 공개와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또 정치권에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런 주장이 이번 세무조사는 언론탄압이며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야당 의원들에게서 나오고 있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은 지난 2월1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공기능을 가진 언론사나 정부투자기관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런 측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94년 실시했던 언론사 세무조사는 물론 지금 진행중인 세무조사 결과도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이 “어떤 정권이라도 세무조사 결과를 움켜쥐고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없도록 공개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국세기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는 의원들 개인의 입장이며,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는 세무조사 결과 공개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법과 관계없이 공개가 가능한 방법은 언론사들 스스로 공개하는 것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 3월30일 성명을 내 “현행법상 국세청이 추징금 통보 내용을 공개하는 데 무리가 있다면, 언론사 스스로 발표해 국민 의혹을 풀고 투명한 언론사 운영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공개할 언론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점에서 이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한국기자협회가 지난 3월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 결과 자체 공개 의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한 16개사 대부분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언론계 안팎에서 `세무조사 결과 공개운동'을 준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권영준 사무차장은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권언유착 의혹이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고 언론길들이기라는 비판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인현 기자





인터뷰/ 참여연대 하승수 변호사


참여연대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승수(사진) 변호사는 “현행법 해석상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데 문제가 없으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시민단체 등의 정보공개 청구에 앞서 정부가 먼저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해야 하는 당위성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알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또 언론사 세무조사를 놓고 언론탄압이냐, 정당한 국가권력 행사냐 논란이 벌어지는 등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있는데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공개돼야 한다.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음으로써 결국 밀실에서 은폐되고 축소되고 말았다. 바로 이런 것이 정치적 논란을 부른다. 이와 함께 권언유착 의혹을 벗고 권력과 언론의 건전한 긴장관계라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도 공개는 반드시 필요한 조처다.

―정부에서는 현행법상 고발할 때 외에는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데?

=정부에서는 국세기본법의 비밀유지 조항을 얘기하는데, 이 조항은 국민들의 알 권리 차원의 공개 여부를 규정한 것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과세정보를 남용하거나, 세무공무원이 경쟁 기업 등에 납세자의 정보를 누설해 사적인 이익으로 이용하게 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다. 따라서 알 권리 차원에서의 공개는 다른 문제다. 정보공개법에는 개인정보를 비공개대상 정보로 인정하면서 `공개가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언론사의 납세실태가 어떤지, 언론사주와 일족의 재산축적 과정에서 `세금없는 부의 세습이 이뤄진 사실이 있는가' 등을 공개하는 것은 철저히 공익적 일이다. 설령 비밀유지 조항이 공개 여부를 규정한 것으로 해석하더라도 공개가 제한되는 것은 세무공무원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원자료일 뿐, 세무조사 결과를 정리한 서류를 공개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기업의 영업상 비밀이나 개인의 사생활 등 보호돼야 할 부분도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현행 정보공개법은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 부분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법인세를 탈루한 부분은 영업상 비밀로 보기 어렵고, 언론사주나 가족이 소득세나 증여세를 탈루한 부분도 언론의 공익성이라는 측면에서 `사생활'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탈루행위 가운데 일부가 사생활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과 공익상 공개할 필요성을 비교해 공개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김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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