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 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 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 보다 먼저 일어 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팽이가 돈다
어린 아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 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쫏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 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것 보다도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 같아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 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난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라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 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만년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 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달나라의 장난>



사람들은 내말을 믿지 않는다
시평의 칭찬 까지도 시집의 서문을 받은 사람까지도
내가 말한 정치의견을 믿지 않는다

봄은 오고 쥐새끼들이 총알만한 구멍의 조직을 만들고
풀이,이름도 없는 낯익은 풀들이 풀새끼들이
허들어진 담밑에서 사과 껍질보다도 얇은

시멘트가죽을 뚫고 일어나며 내 집과 나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들렸다 놓인다
요는 정치의견이 맞지 않는 나라에는 못 산다.

그러나 쥐구멍을 잠시 거짓말의 구멍이라고
바꾸어 생각해 보자 내가 써준 시집의 서문을
믿지않는 사람 얼굴의 사마귀나 여드름을-

그 사람도 거짓말의 총알의 까맣고 빨간 흔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 그래서 우리의 혼란
을 승화시켜보자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일본말보다 더 빨리 영어를 읽을 수 있게된,
몇차례의 언어의 이민을 한 내가
우리말을 너무 잘해서 곤란하게 된 내가

지금 불란서 소설을 읽으면서 아직도 말하지
못한 한가지 말 - 정치의견의 우리말이
생각이 안난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부피가 하늘을 덮는다.
나는 눈을 가리고 변소에 갔다 온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내가 내말을 안 믿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속였는데 모든 것을 속였다
이죄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봄이 오고 쥐가
나돌고 풀이 솟는다 소리없이 소리없이

나는 한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
이 죄의 여운에는 사과의 길이 없다 블란서에
가더라도 금방 자유가 온다해도.

<거짓말의 여운 속에서>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言論의 自由라고 趙芝薰이란
詩人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金日成萬歲'
韓國의 言論自由의 出發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韓國
政治의 自由라고 張勉이란
官吏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1960.10.6.)「'金日成萬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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