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반공 ‘마녀사냥’



틈만나면 '빨갱이몰이' 마녀사냥



15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997년 8월 손바닥 반만한 명함 한 장이 온 나라에 풍파를 일으켰다. 당시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이 외국인용으로 제작해 미국에서 돌린 명함이었다. 이 명함이 문제가 된 것은 국호를 영어·프랑스어 등 7개국어로 표기하면서 한자로 한국이라고 쓴 뒤 괄호 속에 함께 쓴 `남조선'이란 글자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외국인에 대한 `과잉친절'쯤으로 이해되고 넘어갈 이 `해프닝'을 <조선일보>는 8월21일치 사회면에 명함 사진과 함께 “`남조선 국회의원'/국민회의 이석현 의원 명함 파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같은 날치 사설(`남조선 국회의원'?)로 이 의원에 대해 극단적 언어 폭력을 가했다.

“우리는 명색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혹 아무 의식 없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그 무식과 몰상식에 놀라고 이런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은 사실에 수치감을 떨칠 수 없으려니와 혹 그가 고의로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사상과 그 노골성에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 의원은 이 문제와 관련해 “국제화 시대라 외국에 나갈 때 쓰기 위해, 7개국어를 넣은 국제명함을 만든 것이며,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남조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한국' 뒤에 괄호를 치고 `남조선'이라고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구나 이 의원은 문제의 명함을 돌리기 전 `남조선' 부분을 두 줄로 그어 삭제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의원의 해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이씨의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며 “우리를 `남조선'이라 호칭하는 것은 북한이나 친북성향의 해외교포들만에 한정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의 긍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국회는 마땅히 이런 무자격 의원의 제명도 불사하는 단호한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격렬하게 성토했다.
이 사설은 `남조선'이란 단어 하나만을 꼬투리삼아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 국민을 모욕한” 엄청난 사건으로 부풀린 뒤 이 의원의 `사상'에 `색깔'을 입혀 정치적 타격을 가한 마녀사냥식 `색깔 공격'의 전형이었다. 이 의원은 조선일보와 신한국당의 잇따른 공격으로 이 문제가 대선쟁점으로 번지자 8월29일 “일부 인사들이 갖고 있는 사고의 극단적 편향성과 지성의 상실을 우려한다”는 말을 남긴 채 눈물을 쏟으며 자진 탈당하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들의 `색깔 공격'은 `이석현 명함 사건'말고도 15대 대선 내내 지면을 메웠다. 그 한 예가 `양심수 사면 논란'이었다. 발단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97년 10월 31일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우리가 집권하면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람”을 사면하겠다고 한 발언이었다. 김 후보는 이 발언에 이어 “양심수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안 되고, 애국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도, 조선일보는 11월2일치 사설(`디제이 `양심수론''), 11월6일치 사설(``양심수' 재론') 등에서 김 후보의 `사상'에 `의혹'을 제기해 이를 쟁점화했다.

`양심수 사면 논란'에서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빠지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2일치 사설(`누가 `양심수'인가')에서 “김 총재가 염두에 둔 양심수가 혹시 한총련 소속 대학생이나 … 일부 공산주의 관련단체 결성자 등인지도 모르겠다”고 추측을 해놓고는 “그들을 사면할 경우 …안보사태에 구멍이 뚤릴 수도 있다”며 발언의 진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이런 발언을 간헐적으로 하기 때문에 색깔시비가 거듭되는 것 아닌가” 하며 책임을 김 후보에게 돌렸다.

그러나 <조선일보> 등의 양심수 부인과는 달리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인터내셔널)는 이 해 10월15일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양심수에 대한 구금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며 양심수·장기수 석방 등에 관한 대선 후보들의 견해 표명을 요구했다. 또 대한변협도 이 해 9월에 발표한 `96년도 인권보고서'에서 95년 구속된 양심수가 126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김 후보의 `양심수 사면'을 공격했던 신문들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양심수 사면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러나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사상 트집잡기'는 선거 국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로 안기부가 주도하던 `사상 몰이'가 이전의 군사정권에 비해 한풀 꺾이자 이 땅의 수구신문들은 `공안 업무'를 자진해서 떠맡은 뒤,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정치인·학자들을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마녀재판'을 가했다.

문민정부 초기 그 첫 희생자가 한완상 당시 통일부총리였다. 자유주의적 개혁파로 분류되는 한 부총리는 취임 후로 `이인모 노인 북송' 등 비교적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그 자매지 <월간 조선>은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93년 3월 11일치 사설(``핵'과 우방의 의혹')에서 벌써 한 부총리의 대북화해정책을 문제 있는 것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7월11일치 조선일보 김대중칼럼은 한 부총리의 대북화해론을 “나이브한 감상적 통일론”이라고 규정한 뒤 “스스로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사실상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 칼럼에 대해 한 부총리는 “나는 통일지상주의자가 아니다”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으나, 조선일보는 7월21일, 22일, 10월19일치 사설에서 거듭 한 부총리를 공격했다.

나아가 월간조선은 93년 8월호에서 `한완상의 충격적인 대북관'이란 선정적인 제목으로 한 부총리가 `위험한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이 의존한 것은 한 부총리가 한국사회학회장을 맡던 시절 이 학회가 펴낸 <한국전쟁과 한국사회변동>에 실린 `한국사회 연구와 한국전쟁'이라는 그의 권두논문이었다. 그러나 이 논문은 그 책에 실린 여러 견해를 정리한 뒤, 결론으로서 남한의 현실은 비판하면서 북한의 현실은 그렇게 비판하지 않는 일부 진보적 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선 보수적 주장일 수도 있는 논문을 근거삼아 월간조선은 한 부총리의 사상을 `충격적인' 것으로 부풀린 셈이다. 월간조선의 이 기사에 대해 8월17일 전국 21개 대학 사회학과 교수 47명은 공동성명을 내 “학술적 논의를 심각히 왜곡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역행시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며 월간조선쪽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한 부총리는 이해 12월 개각에서 교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 김대중 정부가 한씨를 다시 교육부총리로 입각시키자 조선일보는 바로 다음날치 사설(`눈뜨면 바뀌는 교육총수')에서 “지나친 친북 인물, 교육부총리 안 된다”는 우익단체의 주장을 빌려 그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 뒤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색칠'을 계속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비판 그물에는 이인제 노동부 장관, 김정남 사회문화수석 등 개혁적인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은 예외없이 걸려들었다. 94년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조문단을 파견할 용의는 없느냐”는 이부영 당시 민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을 문제삼아 대한민국이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며 온 나라를 색깔 논쟁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치와 직접적 상관이 없는 대학교수도 이 그물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97년 대선 국면에서 벌어진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사건'이다. 사건의 지원은 월간조선의 93년 7월호 기사 `통일원의 이상한 통일 캠페인―통일되면 수도와 나라꽃이 바뀌나'와 9월호 기사 `통일원의 통일캠페인 참고도서에 글을 쓴 두 어린이가 말하는 왜곡·변형의 사례'였다.

이 기사에서 월간조선은 통일원이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광고한 `통일 캠페인'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연상케 하고 대한민국 국가와 정통성을 뒤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돈을 들여 용공·이적 표현물을 제작한 셈인데, 월간조선이 이런 주장을 한 근거는 광고에 출연한 농구선수 우지원씨와 미스코리아 한성주씨가 나눈 대화, 가수 이선희씨가 부른 노래 <우리는 하나>의 가사 일부였다.

대화에서 한성주씨는 “통일이 되면 수도는 어디가 될까요? 나라꽃은 무엇이 될까요? 공휴일은 어떻게 바뀔까요?”라고 의견을 물었는데, 월간조선은 이를 “나라꽃이 바뀔 수도 있고 수도 서울이 옮겨질 수도 있으며 공휴일도 바뀔 수 있다”는 단정적인 서술형 문장으로 바꿔친 뒤 통일원이 마치 북한 중심으로 수도와 나라꽃과 공휴일을 바꾸자고 한 것처럼 몰아갔다. 또 “(북한 사람들이) 어렸을 땐 우리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더라구요”라고 한 우지원씨의 말을 놓고 “납득할 수 없으며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는 상식 밖의 주장을 폈다.

이 기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광고에 쓰인 참고도서 중 하나가 이장희 교수가 95년 10월 청소년용으로 펴낸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책이라고 지목하고 이 교수를 물고늘어졌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책 안에서 이미 “최선의 방법은 서울을 수도로 그냥 두는 것이고, 옮기더라도 한반도의 중심이자 한강을 끼고 있는 한반도의 허리부분이 될 것”이라고 밝혔고, 공휴일에 대해서도 “통일이 되면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공휴일에서 빠질 것”이라고 적시했다. 문제삼는 것 자체가 문제인 기사였던 셈이다. 게다가 이 책은 조선일보(95년 11월 24일치) 등의 신간안내를 통해 좋은 책으로 소개했던 책이다.

월간조선은 이 터무니없는 기사에 대한 이 교수의 반론보도문을 두번이나 연거푸 실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월간조선 9월호 보도를 받아 8월29일치 사설(`나는야 통일 1세대')에서 어린이의 글 일부가 삭제된 걸 문제삼아 “정말 어린이의 글을 특정한 시각에서 취사선택한 일은 없는지 지식인의 소신으로 말해야 한다”며 이 교수를 압박했다. 이어 대선 투표일을 20일 앞두고 검찰은 `이적표현 혐의'로 이 교수의 구속영장을 두번이나 신청했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3년 2개월의 법정공방 끝에 지난 2월 23일 무효판결을 받았다.

반공을 유일무이한 잣대로 들이대는 수구신문의 진보적·개혁적 인사 공격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로도 계속됐다. 그 하나가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케이스다. 조선일보는 98년 2월11일치 해설에서 경제수석에 임명된 김태동씨에 대해 “`사회주의 색채가 강하다'고 그를 비판하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다”고 썼다. 구체적으로 누가 그렇게 비판하는지는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색깔칠부터 한 것이다. 그 뒤로도 조선일보는 김 수석(뒤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재벌개혁론 등이 너무 과격하다며 틈만 나면 공격했다.
한 인물을 두고 좌경이니 용공이니, 사상이 의심스럽다느니, 친북이 아니냐느니 하며 사상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사건의 결정판은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제출한 `최장집 사상 검증'이었다. 98년 말 내내 온 나라에 중세식 마녀사냥의 장작불을 피워올린 이 희비극적 사건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매국을 일삼던 수구언론이 해방 뒤 친일을 감추고 생존하기 위해 뒤집어쓴 반공이라는 외투를 벗지 않고 고집한 데 따른 역사적 귀결이기도 했다.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4092053043.html

사상검증, 논문 앞뒤자르고 “사상 위험”



1998년 10월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터뜨린 `최장집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사상검증 사건'은 반공이라는 색안경을 낀 언론권력이 한 사람의 학자를 어떻게 정치적·인격적으로 매장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조선일보는 98년 10월 24일치에서 최장집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이 6·25를 민족해방 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왜곡·과장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월간조선 98년 11월호에 게재된 `대통령 자문 정책기위획위원장 최장집 교수(고려대)의 충격적 6·25전쟁관 “6·25년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기사가 출발점이었다. 월간조선의 이 기사는 최 위원장이 93년 펴낸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의 한 부분인 `한국전쟁의 한 해석'에 쓴 구절의 일부를 문제삼아 “6·25전쟁을 평가함에 있어 대한민국 국민에게 불리하게, 북한에는 유리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최 위원장은 10월 20일 “월간조선이 논문 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했고, 논문의 어휘, 문장을 의도적으로 문맥과 분리인용해 필자의 사상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모해했다”는 내용의 장문의 반박문을 조선일보사에 보냈다. 최 위원장은 또 “논문의 전체 문맥은 전쟁발발의 최종적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도 월간조선은 논문의 전체 논지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관련 기사를 21일치에 보도하면서 월간조선의 보도내용을 다시 요약해 내보내자, 최 위원장은 23일 명예훼손 혐의로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 소송사건을 1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후 거의 두달 동안 사설·칼럼·기고·기사를 총동원해 조선일보의 `사상검증'이 정당하며 최 위원장의 사상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그런 주장을 내포한 기사 가운데 하나가 26일치 4면에 실린 `한국전쟁 관련 최장집 위원장 논문 발췌'다. 이 기사는 “미군과 한국군의 38선 돌파 `공격적 팽창주의의 발로'/`김일성은 열렬한 민족주의자 민족통일의 사명감 가졌다'/`마치 북의 공격 기다린 듯 미, 전광석화처럼 개입”이란 소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월간조선과 마찬가지로 최 위원장이 쓴 논문을 앞뒤 잘라 문맥과 상관없이 일부만 인용한 데다, 부르스 커밍스 등 다른 학자의 시각을 검토하는 차원에서 인용한 글을 최 위원장의 견해인양 보도하는 행태를 보였다.

조선일보의 상식 밖의 보도가 계속되자 참여연대·민주노총·환경운동연합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조선일보허위·왜곡보도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됐고, 지식인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법원도 11월 11일 최 위원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월간조선 배포금지 결정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이 결정을 무시하고 계속 관련 기사를 내보내자 담당 판사는 “조선일보사에서 매우 악의적인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며 장문의 조선일보 비판문을 법원 내부 인터넷 통신망에 올리기도 했다.

최장집 사상 검증 사건은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공인의 인격을 훼손한 `언론폭력'이라는 무수한 비판을 받았다. 과거와 같으면 조선일보의 논조를 따라갔을 다른 신문 대다수도 중립을 지키거나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쪽에 섰다. 이 사건은 이듬해 1월 19일 최 위원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소송을 취하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 위원장은 3달 후 위원장직에서 경질돼 조선일보쪽의 `사상공격'이 결국 먹혀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냉전적이고 반공지상주의적인 시각으로 진보적·개혁적 인사들을 공격하는 언론권력의 행태는 계속됐다. `안티조선운동'은 이런 행태를 참지 못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언론권력 거부운동이다.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4/0050000002001041001168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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