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나면 '빨갱이몰이' 마녀사냥 평소 같으면 외국인에 대한 `과잉친절'쯤으로 이해되고 넘어갈 이 `해프닝'을 <조선일보>는 8월21일치 사회면에 명함 사진과 함께 “`남조선 국회의원'/국민회의 이석현 의원 명함 파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는 같은 날치 사설(`남조선 국회의원'?)로 이 의원에 대해 극단적 언어 폭력을 가했다. “우리는 명색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란 사람이 혹 아무 의식 없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그 무식과 몰상식에 놀라고 이런 사람을 국민의 대표로 뽑은 사실에 수치감을 떨칠 수 없으려니와 혹 그가 고의로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사상과 그 노골성에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이 의원은 이 문제와 관련해 “국제화 시대라 외국에 나갈 때 쓰기 위해, 7개국어를 넣은 국제명함을 만든 것이며,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남조선'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한국' 뒤에 괄호를 치고 `남조선'이라고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구나 이 의원은 문제의 명함을 돌리기 전 `남조선' 부분을 두 줄로 그어 삭제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의원의 해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이씨의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며 “우리를 `남조선'이라 호칭하는 것은 북한이나 친북성향의 해외교포들만에 한정돼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의원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의 긍지를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국회는 마땅히 이런 무자격 의원의 제명도 불사하는 단호한 징계를 내려야 할 것”이라고 격렬하게 성토했다. 이 사설은 `남조선'이란 단어 하나만을 꼬투리삼아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 국민을 모욕한” 엄청난 사건으로 부풀린 뒤 이 의원의 `사상'에 `색깔'을 입혀 정치적 타격을 가한 마녀사냥식 `색깔 공격'의 전형이었다. 이 의원은 조선일보와 신한국당의 잇따른 공격으로 이 문제가 대선쟁점으로 번지자 8월29일 “일부 인사들이 갖고 있는 사고의 극단적 편향성과 지성의 상실을 우려한다”는 말을 남긴 채 눈물을 쏟으며 자진 탈당하고 말았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들의 `색깔 공격'은 `이석현 명함 사건'말고도 15대 대선 내내 지면을 메웠다. 그 한 예가 `양심수 사면 논란'이었다. 발단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97년 10월 31일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우리가 집권하면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사람”을 사면하겠다고 한 발언이었다. 김 후보는 이 발언에 이어 “양심수란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은 안 되고, 애국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도, 조선일보는 11월2일치 사설(`디제이 `양심수론''), 11월6일치 사설(``양심수' 재론') 등에서 김 후보의 `사상'에 `의혹'을 제기해 이를 쟁점화했다. `양심수 사면 논란'에서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빠지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2일치 사설(`누가 `양심수'인가')에서 “김 총재가 염두에 둔 양심수가 혹시 한총련 소속 대학생이나 … 일부 공산주의 관련단체 결성자 등인지도 모르겠다”고 추측을 해놓고는 “그들을 사면할 경우 …안보사태에 구멍이 뚤릴 수도 있다”며 발언의 진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이런 발언을 간헐적으로 하기 때문에 색깔시비가 거듭되는 것 아닌가” 하며 책임을 김 후보에게 돌렸다. 그러나 <조선일보> 등의 양심수 부인과는 달리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 인터내셔널)는 이 해 10월15일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양심수에 대한 구금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며 양심수·장기수 석방 등에 관한 대선 후보들의 견해 표명을 요구했다. 또 대한변협도 이 해 9월에 발표한 `96년도 인권보고서'에서 95년 구속된 양심수가 1263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김 후보의 `양심수 사면'을 공격했던 신문들은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양심수 사면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러나 국민의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사상 트집잡기'는 선거 국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로 안기부가 주도하던 `사상 몰이'가 이전의 군사정권에 비해 한풀 꺾이자 이 땅의 수구신문들은 `공안 업무'를 자진해서 떠맡은 뒤, 진보적이거나 개혁적인 정치인·학자들을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마녀재판'을 가했다. 문민정부 초기 그 첫 희생자가 한완상 당시 통일부총리였다. 자유주의적 개혁파로 분류되는 한 부총리는 취임 후로 `이인모 노인 북송' 등 비교적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그 자매지 <월간 조선>은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93년 3월 11일치 사설(``핵'과 우방의 의혹')에서 벌써 한 부총리의 대북화해정책을 문제 있는 것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어 7월11일치 조선일보 김대중칼럼은 한 부총리의 대북화해론을 “나이브한 감상적 통일론”이라고 규정한 뒤 “스스로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사실상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이 칼럼에 대해 한 부총리는 “나는 통일지상주의자가 아니다”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으나, 조선일보는 7월21일, 22일, 10월19일치 사설에서 거듭 한 부총리를 공격했다. 나아가 월간조선은 93년 8월호에서 `한완상의 충격적인 대북관'이란 선정적인 제목으로 한 부총리가 `위험한 통일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간조선이 의존한 것은 한 부총리가 한국사회학회장을 맡던 시절 이 학회가 펴낸 <한국전쟁과 한국사회변동>에 실린 `한국사회 연구와 한국전쟁'이라는 그의 권두논문이었다. 그러나 이 논문은 그 책에 실린 여러 견해를 정리한 뒤, 결론으로서 남한의 현실은 비판하면서 북한의 현실은 그렇게 비판하지 않는 일부 진보적 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선 보수적 주장일 수도 있는 논문을 근거삼아 월간조선은 한 부총리의 사상을 `충격적인' 것으로 부풀린 셈이다. 월간조선의 이 기사에 대해 8월17일 전국 21개 대학 사회학과 교수 47명은 공동성명을 내 “학술적 논의를 심각히 왜곡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역행시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며 월간조선쪽의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한 부총리는 이해 12월 개각에서 교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1월 30일 김대중 정부가 한씨를 다시 교육부총리로 입각시키자 조선일보는 바로 다음날치 사설(`눈뜨면 바뀌는 교육총수')에서 “지나친 친북 인물, 교육부총리 안 된다”는 우익단체의 주장을 빌려 그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 뒤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색칠'을 계속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비판 그물에는 이인제 노동부 장관, 김정남 사회문화수석 등 개혁적인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은 예외없이 걸려들었다. 94년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조문단을 파견할 용의는 없느냐”는 이부영 당시 민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을 문제삼아 대한민국이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며 온 나라를 색깔 논쟁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정치와 직접적 상관이 없는 대학교수도 이 그물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97년 대선 국면에서 벌어진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사건'이다. 사건의 지원은 월간조선의 93년 7월호 기사 `통일원의 이상한 통일 캠페인―통일되면 수도와 나라꽃이 바뀌나'와 9월호 기사 `통일원의 통일캠페인 참고도서에 글을 쓴 두 어린이가 말하는 왜곡·변형의 사례'였다. 이 기사에서 월간조선은 통일원이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통해 광고한 `통일 캠페인'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연상케 하고 대한민국 국가와 정통성을 뒤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돈을 들여 용공·이적 표현물을 제작한 셈인데, 월간조선이 이런 주장을 한 근거는 광고에 출연한 농구선수 우지원씨와 미스코리아 한성주씨가 나눈 대화, 가수 이선희씨가 부른 노래 <우리는 하나>의 가사 일부였다. 대화에서 한성주씨는 “통일이 되면 수도는 어디가 될까요? 나라꽃은 무엇이 될까요? 공휴일은 어떻게 바뀔까요?”라고 의견을 물었는데, 월간조선은 이를 “나라꽃이 바뀔 수도 있고 수도 서울이 옮겨질 수도 있으며 공휴일도 바뀔 수 있다”는 단정적인 서술형 문장으로 바꿔친 뒤 통일원이 마치 북한 중심으로 수도와 나라꽃과 공휴일을 바꾸자고 한 것처럼 몰아갔다. 또 “(북한 사람들이) 어렸을 땐 우리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더라구요”라고 한 우지원씨의 말을 놓고 “납득할 수 없으며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는 상식 밖의 주장을 폈다. 이 기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광고에 쓰인 참고도서 중 하나가 이장희 교수가 95년 10월 청소년용으로 펴낸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책이라고 지목하고 이 교수를 물고늘어졌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책 안에서 이미 “최선의 방법은 서울을 수도로 그냥 두는 것이고, 옮기더라도 한반도의 중심이자 한강을 끼고 있는 한반도의 허리부분이 될 것”이라고 밝혔고, 공휴일에 대해서도 “통일이 되면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공휴일에서 빠질 것”이라고 적시했다. 문제삼는 것 자체가 문제인 기사였던 셈이다. 게다가 이 책은 조선일보(95년 11월 24일치) 등의 신간안내를 통해 좋은 책으로 소개했던 책이다. 월간조선은 이 터무니없는 기사에 대한 이 교수의 반론보도문을 두번이나 연거푸 실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월간조선 9월호 보도를 받아 8월29일치 사설(`나는야 통일 1세대')에서 어린이의 글 일부가 삭제된 걸 문제삼아 “정말 어린이의 글을 특정한 시각에서 취사선택한 일은 없는지 지식인의 소신으로 말해야 한다”며 이 교수를 압박했다. 이어 대선 투표일을 20일 앞두고 검찰은 `이적표현 혐의'로 이 교수의 구속영장을 두번이나 신청했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당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3년 2개월의 법정공방 끝에 지난 2월 23일 무효판결을 받았다. 반공을 유일무이한 잣대로 들이대는 수구신문의 진보적·개혁적 인사 공격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로도 계속됐다. 그 하나가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케이스다. 조선일보는 98년 2월11일치 해설에서 경제수석에 임명된 김태동씨에 대해 “`사회주의 색채가 강하다'고 그를 비판하는 경제학자들도 적지 않다”고 썼다. 구체적으로 누가 그렇게 비판하는지는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색깔칠부터 한 것이다. 그 뒤로도 조선일보는 김 수석(뒤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재벌개혁론 등이 너무 과격하다며 틈만 나면 공격했다. 한 인물을 두고 좌경이니 용공이니, 사상이 의심스럽다느니, 친북이 아니냐느니 하며 사상검증을 하겠다고 나선 사건의 결정판은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제출한 `최장집 사상 검증'이었다. 98년 말 내내 온 나라에 중세식 마녀사냥의 장작불을 피워올린 이 희비극적 사건은 일제 강점기에 친일매국을 일삼던 수구언론이 해방 뒤 친일을 감추고 생존하기 위해 뒤집어쓴 반공이라는 외투를 벗지 않고 고집한 데 따른 역사적 귀결이기도 했다.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40920530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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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반공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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