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자성과 울분

[언론권력] “언론권력 표적보도 큰 타격”

심층해부 언론권력 


제1부 무한권력 횡포 


⑤자성과 울분 


언론권력은 과연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는가. <조선일보> 현역기자의고백과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인터뷰를 통해 언론권력 실체의 한 단면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왜곡보도 공동대처 필요

■노무현 장관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이래 나름대로 `서민의 대표' 노선을 표방하다가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당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는 88년 12월 현대중공업 파업 당시 노동자 집회에서 “울산은 노동자가 많이 사는 곳이니까 노동자 대표를 뽑아주시고, 저는 또 다른 어느 곳에 가면 당선되지 않겠느냐”고 발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몇몇 유력 신문들이 이를 “나는 어디 가든지 당선된다. 나같은 사람 20명만 있으면 국회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해 `교만한 정치인'의 표본처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뒤로도 그는 91년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의원, 알고보니 부자…호화 요트 소유”(<주간조선>)라는 보도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것을 비롯해 지난 10여년간 언론과 끊임없이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88년 현대중공업 관련 보도 때 심정은?
=발언을 비틀어 교만한 사람으로 몰고가는데, 처음에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영문을 알 수 없어 어쩔 줄 몰라했다.



―항의했나?
=기자실을 찾아가 해명하고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성명서 가운데 과격하다는 인상을 주는 일부 대목만 인용해 더욱 오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설까지 동원해 지근지근 밟았다.



―왜 그런다고 생각했나?
=단순한 흥미 위주 보도가 아니었다. 정치인이 노동자 집회 따위를 찾아다니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자는 분명한 의도가 엿보였다. 정치인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이었다.



―정치를 하려면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분위기인데 그런 사정을 몰랐나?
=나도 언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갈등을 많이 겪었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지 어떻게 하나. 한국사회는 언론이 바뀌어야 변화한다.



―91년 <주간조선> 사건 때는 1심 재판에서 승소하고 2심 제소를 자진취하했는데.
=1심 재판에서 보도가 잘못됐음은 인정받았지만, 3억원을 청구한 데 비해 판결은 2천만원만 나왔다. 2심으로 끌고가도 제대로 될 지 맥이 풀렸다. 또한 주변에서 그만하면 명예회복은 되지 않았느냐며 강하게 만류했다.



―누가 어떻게 만류했나.
=당시 통합 민주당 대변인이었는데 당 지도부가 `대변인이 언론과 싸우면 당은 어떻게 되느냐'며 말렸다. 해당 신문사 출입기자들도 당 지도부쪽에 “계속 이러면 당에 대해 좋지 않은 기사가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소송을 취하할 것을 요구하는 뜻을 집요하게 전달해왔다. 나는 “나를 박해하지 말고 누가 나오든 정정당당하게 공개토론하자”는 내용으로 조선일보사 전 사원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으나 그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쓴 맛'을 봤을텐데도 요즘 `언론권력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치인이 약자에게 관대하고 강자의 횡포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는 소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뭐가 바뀌고 있나?
=과거 88년, 91년 사건 때에는 특정 언론이 정치인 죽이기에 나서도 대부분의 다른 신문·방송은 구경만 했다. 그러나 요즘은 (언론권력과 맞서는 행보에) 관심을 갖는 신문·방송이 늘었고, 인터넷 등 사이버 언론도 생겼다. 그래서 전력을 다하면 자신을 방어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성역'비켜가기 내부반성도

■ 조선일보 기자 고뇌




“선배 너무 비겁한 거 아닙니까? 정면대결을 해야지 사주 뒷조사나 하고 말이지….”
최근 <한겨레>가 우리신문 회장 일가의 편법상속 의혹을 보도한 뒤 한 후배가 이렇게 물어왔다. 그 신문도 우리처럼 할말은 하는 신문 아니냐며 농반 진반으로 얼버무렸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한겨레> 보도에 대한 편집국의 반응은 이 후배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중에는 “디제이 신문은 어쩔 수 없다”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고, “보도 배경이 다소 의심스럽다”는 기자들도 많다. 하지만 정작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왈가왈부 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왕회장' 집이 정말 그렇게 크냐는 호기심만은 사내에 그득하다.

이른바 `할말은 하는 신문'에서 불행히도 `할말을 하는 기자'는 그리 많지 않다.
얼마전 우리 신문에 `사장열전'이 실린 날, `술이 통하는' 몇몇 기자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입담이 거센 동료의 이죽거림이 시작됐다. “우리는 초대사장은 없나 보지? 친일경력 가진 인물들은 쏙 빠졌던데?” 술잔을 기울이며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새벽녘 해장국집에서 내린 결론은 “이래서 우린 늘 비주류”라는 자조였다.

지난해 말인가. 김병관 회장의 `고대앞 사건' 이후 절친한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평기자들 사이에서 편향적 보도에 대한 공개 반성 등의 주장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지만, 결국엔 `어차피 신문 잘 만들자는 건데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온건론이 대세를 이뤘다고 한다. 그는 여러차례 “메이저 신문의 기자들이 갈수록 `권력을 가진 샐러리맨'에 안주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그의 푸념을 들으면서 그나마 편집국 안에 그런 자기반성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만해도 부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조선일보> 편집국은 두가지 이데올로기적 성벽이 크게 울타리를 치고 있다. 국가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그것이다. 입사 초기 이른바 `진보적 성향'을 보이던 기자들도 4~5년이 지나면 어느샌가 `조선 스타일'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아무도 사주의 `강요'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묘하게 읍습하게 그저 몸에 밸 뿐이다. 경력기자로 입사한 한 기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과거에 품을 들이는 것보다 훨씬 취재가 잘 된다. 조선의 매체력 때문이다. 출입처에서 대우도 달라지더라. 월급 많이 주고 밖에서 대우 받는데 무슨 불만이 있겠냐.”

회사의 조직관리 행태가 이런 상황을 은근히 부추긴다. 이른바 사내 `주류집단'이 이너서컬화 해 조직적인 재생산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에 끼느냐 마느냐는 기자로서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대개는 회사에 대한 충성도로 결정된다. 얼마전 잘 나가던 한 기자는 노조활동 과정에서 회사쪽과 `원치않는 마찰'을 빚는 바람에 두번이나 승진에서 탈락했다. 외부에선 이를 두고 `마피아식 조직관리'라고 비난하지만, 편집국 안에서는 별 불만이 없다.

편집국 중심으로 구성된 노조가 한번쯤 문제제기를 할 만도 하지만 침묵 뿐이다. 가끔 보도와 관련한 의견을 내놓긴 하지만 지면비평 수준인 데다 편집방향과 관련된 것은 여전히 `성역'이다.

얼마전 한 간부는 현 정부의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도발'이라고 표현했다. “디제이의 언론개혁은 계급투쟁적 성격이 있다. 또 마이너신문들의 메이저 신문들을 위한 공세의 측면도 있다. 명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도전을 받는 입장에서 찬성할 수 없다.”

솔직히 녹을 먹고 있는 회사를 비판하는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그럴 자격이 있는 지, 또 `누워 침뱉는' 비겁한 행동은 아닌 지 곤혹스러웠다. 동료나 선후배를 욕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한국 최고의 신문'에 걸맞는 고민을 동료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해당 기자의 뜻을 존중해 표현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렸음을 알려드립니다.)


특별취재반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111835055.html


[언론권력] 언론권력피해자 “사주 낮춰 부른뒤 집중타 맞아”

동아,설립자 친일거론 정치인 비판기사
조선 ,대선 가상대결서 노무현 아예 무시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는 언론권력의 정점인 사주의 권위를 본의건 아니건 건드렸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98년 4월8일치 <조선일보>는 “TJ, 연일 `국민은 뭘 몰라'/잇단 말 실수…안팎 비판'이란 제목으로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기사는 박 총재가 당시 재·보궐 선거에서 진 뒤 “국민들이 김영삼 정권의 실정을 잘 모른다”고 발언하고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박 총재쪽은 기사가 나간 뒤, 전날 신문의 날 리셉션장에서 있었던 해프닝이 기사 작성의 배경이 된 게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고 한다.


박 총재는 행사장에서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연하인 방 사장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자네'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박 총재의 한 측근은 “이것을 방 사장이 불쾌하게 여긴 것 같다”며 “이에 따른 감정섞인 보도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98년 3월 재야 출신인 이해찬 의원이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자 <동아일보>는 `교육장관, 엉뚱한 인사'라는 비판적인 제목의 사회면 머릿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교육계 인사들은 `…과격한 재야 운동권출신 정치인이 정책기조를 뒤흔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내용이었다.


장관 기용의 적절성은 언론사가 편집정책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이 의원쪽은 그 배경에 자신과 <동아일보>와의 `구원'이 깔려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의원은 93년 7월 국회에서 김병오 의원과 함께 <동아일보>의 설립자인 김성수씨의 친일 혐의를 거론한 바 있다. 국가보훈처가 김씨를 비롯한 8명의 독립유공자를 놓고 서훈 취소 여부를 검토하는 가운데 “친일 문제는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사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뒤 이 의원은 그럴 듯한 의정활동을 해도 이 신문에서 영 취급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관이 되자 크게 `한 방'을 먹인 것으로 이 의원쪽은 해석했다.


동아일보 당시 사회부장은 “이 의원의 보훈처 상훈 관련 문제제기가 어떠한 형태로든 기사작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며 “당시 이 의원의 교육부장관 임명은 찬·반 양론이 있었으며, 다른 신문의 전반적인 논조와 비교해봐도 특별히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올해 1월1일치를 통해 2002년 대선 여야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나라당 후보로 이회창 총재를 정하고 그 상대로 민주당 주자들을 번갈아 붙였으나 유력 후보인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빼놓았다.


같은 날짜 <한겨레>나 2월22일치 <동아일보>, 2월23일치 <경향신문> 등이 모두 노 장관이 이 총재와 맞붙어 막상막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과는 매우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었다.


노 장관은 91년 <주간조선>의 `인권변호사 출신 노무현 의원, 알고보니 부자…호화 요트 소유' 기사와 관련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1심 재판에서 승소한 뒤 소를 취하했으나 “그 보도 이후 나와는 불편한 관계”라는 것이 노 장관의 견해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이철 전 의원도 언론사주를 건드렸다가 혼쭐난 경험이 있다. 그는 88년 13대 국회에서 80년 언론인 강제해직 문제를 두고 조선일보사 방우영 현 회장 등 사주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가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고 그의 한 측근은 토로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김창기 정치부장은 “당시 기사 끝부분에서 밝힌 대로 당내에서는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실시했으며, 당직자가 아닌 사람 중에는 고건 서울 시장을 선택한 것일 뿐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을 배제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며 “당시엔 생각을 못했으나 기사가 나간 뒤 다른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보니 노 장관의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다음 여론조사에서는 노 장관도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총재 기사에 대해서도 당시 취재기자는 “그가 말을 함부로 한다는 얘기가 있어 데스크에 보고한 뒤 기사화했을 뿐 다른 배경은 없다”고 밝혔다.

특별취재반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1120020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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