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안티조선’운동

[언론권력] ˝편파·왜곡 용납 못한다˝

`언론권력'에 대한 국민의 `반란'이 시작됐다. `안티조선'이란 이름으로 번지고 있는 <조선일보> 반대 운동이 이 반란의 중심에 섰다.



이제껏 신문이 쓰면 쓰는 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던 언론 수용자들이 더는 `언론권력'의 횡포를 참을 수 없다며 일어난 것이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지식인에서 농민까지, 청소년부터 노인층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언론권력을 거부하고 나선 것은 우리 언론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안티조선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 거부 운동은 한국 언론사상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대체 왜 독자들은 특정 신문사 또는 언론을 지목해 거부운동에까지 나서는 것일까. 언론권력을 스스로 심판하겠다는 이 움직임은 어디까지 퍼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17일 오후 4시 대구 시내 국채보상공원 종각 앞.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조선일보여, 나를 고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3·1절을 맞아 지난 1일 조선일보와 조선일보사주의 일제강점기 친일행위를 알리는 전단 5만 여장을 뿌린 경산진보연합 회원 이상호씨 등 시민단체 회원 3명이 조선일보사 대구지사로부터 고소를 당한 데 대한 항의집회였다.


인터넷상의 안티조선 사이트 `우리모두'의 대표로 이 집회에 나선 노혜경 시인(부산대 강사)은 “조선일보의 과거 친일사실을 알리고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라며 “그런데도 조선일보가 이 사실을 알린 시민단체 회원들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모임이 끝난 뒤 “조선일보의 반민족 친일행위를 고발하는 것이 명예훼손이요 업무방해라면 나를 고소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민들에게 5천여장의 전단을 나눠주며 조선일보 대구지사를 거쳐 대구 시내 한일극장 앞까지 행진했다.


특정 신문사를 겨냥해 거부운동을 벌이는 데 대해 `언론자유' 침해가 아니냐는 반론도 없지는 않다. 이에 대해 모임 전체가 `안티조선'을 선언한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의 김상봉 운영위원(전 그리스도신대 교수)은 “안티조선이야말로 진정한 언론자유를 찾기 위한 국민적 운동”이라고 반박한다. 김 위원은 “수십년 동안 독재정권과 싸워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그 결과는 유력신문 몇 곳에 권력을 헌납한 꼴이 됐다”며 “안티조선은 특정 신문을 반대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 위에 군림해 횡포에 가깝게 권력을 휘두르는 언론권력에 대항해 평범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반란이란 점에서 언론사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특정 신문사의 역사와 논조를 겨냥해 일반시민들이 규탄집회를 벌이고 구독거부 등 실천행동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안티조선운동은 짧은 시간 안에 더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


지역전체가 참여하는 운동으로 번져 지역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상이군경회·전교조 지회 등 다양한 성향의 단체가 두루 가입하고 군의회 의원들까지 모두 참여한 회원수 400여명의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조선바보)은 주목할 만한 사례다. 이웃인 영동군도 옥천의 영향을 받아 최근 `조선바보 영동시민모임'이 결성됐다.


지난해 조선일보사 주최 고등학생 논술대회에서 대상을 받고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거부한 한윤형(19·서울대 1년)씨도 안티조선운동에 열심이다. 한씨는 “조선일보는 공직에 진보인사가 있어선 안 된다며 `빨갱이 사냥'을 하고, 중고생의 두발 자유화는 `교사의 영이 안 서기 때문'에 안 된다 하고 …, 안 되는 것투성이다. 이런 신문이 일등 행세를 하는 사회에서 산다는 건, 너무 삭막하다”고 운동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한다.


지난해 9월 결성돼 한국노총·민주노총·전교조·민교협 등 56개 단체가 가입한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공동대표 김동민·문규현·오종렬·홍근수)는 지난 5일 학자·종교인·문인·시민사회운동가·변호사 등 531명이 참여한 3차 `조선일보 거부 지식인 선언'을 발표했다. 지난해 1차 선언(154명) 및 2차 선언(153명)보다 세 배 이상 많은 지식인이 한꺼번에 서명했다. 김동민 대표는 “지금도 선언에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새로운 선언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한국방송공사의 왜곡보도에 대한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이 국민적 운동으로 번지면서 방송의 `과거'는 철저한 비판과 검증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족벌언론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비판과 검증 절차가 없었다.


족벌신문들의 `언론권력'적 보도 태도를 놓고 본격적인 논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한 것은 98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98년 당시 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위원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사실상의 `사상검증'은 이런 논쟁이 폭발해 시민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는 “조선일보는 최 위원장의 논문을 앞뒤 잘라버리고 일부 내용만 발췌해 문제삼는 상식밖의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당시 이 보도를 비판했던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와 정지환 월간 <말>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99년 11월 1심 패소판결을 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익명의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성금 모금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또 칼럼니스트 홍세화씨가 이 사건과 관련해 강 교수를 옹호하며 <한겨레>에 `나를 고소하라'는 칼럼을 싣자 네티즌들의 호응이 잇따랐다. `안티조선'이란 이름이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였다.


`우리모두'(urimodu.com)는 이 무렵 만들어진 안티조선 인터넷 사이트다. `우리모두'는 지난해 1월 조회수를 세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153만이 넘는 네티즌이 방문했다. 이 사이트는 매일 5천명 정도가 접속하고 있고, 1천~2천 건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안티조선 모임으로는 `월간 <인물과사상> 독자모임'(인사모)이 있다. 현재 서울·광주·부산·대구 등 전국 13곳의 지역모임이 결성돼 4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씨는 “안티조선운동은 일제와 독재의 나팔수 노릇을 하며 힘을 키워온 조선일보가 수구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한 권력을 남용하는 데 대한 시민적 저항”이라며 “안티조선은 그 자체로 언론개혁의 중요한 토대”라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사쪽에 전화를 걸어 반론을 요청했으나 마감시각까지 응답해오지 않았다.


특별취재반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181912025.html


[언론권력] ˝'안티조선'은 시민개혁운동˝

“조선일보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자는 의미에서 우리 스스로를 `독립군'이라고 부릅니다. 지난해 8월15일 33명이 모여 정지용 시인 흉상 앞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출범식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죠.”



서울에서 두 시간을 달려 내려간 충북 옥천에서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조선바보)을 이끌고 있는 전정표(48) 대표는 옥천 안티조선 운동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 대표는 “지역정서와 맞는 방식으로 지역민과 함께하는 조선일보 반대 운동의 전범을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구체적인 방식은 조선일보의 반민족적인 친일행위를 알려 옥천에서 조선일보의 자취를 감추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바보'가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에 집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 대표와 함께 모임을 이끌고 있는 오한흥(44) <옥천신문> 편집국장은 “지금 조선일보 행태의 첫단추가 바로 친일행각”이라며 “조선일보를 바로보는 문제는 언론개혁 차원보다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한 사회개혁 운동이자 곧 나와 사회를 바로보자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읍내를 돌며 확인한 조선 바보운동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읍내 한쪽에 위치한 청맥꽃화원. 안방에서 연신 능숙한 솜씨로 꽃장식을 하고 있던 꽃집주인 유재목(39)씨는 옥천신문에 연재됐던 조선일보의 친일행각 시리즈를 보고 `독립군'에 참여했다고 한다. 유씨는 “이곳 옥천에서는 조선일보를 봐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많이 확산돼 있다”고 말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군청 3층의 군의회 의원휴게실에서 만난 군의회 민종규(59) 부의장은 `독립군이 맞냐'는 질문을 받고 책장에서 책 한권을 뽑아 들었다. 그는 `조선일보 편파·왜곡보도 공동대책위원회'가 펴낸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는 책자를 내보이며 “이 책을 보고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조선일보에 대한 어떤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가톨릭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인상깊었다”며 “자신의 주장을 곧게 내세우는 것 못지 않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비는 것도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옥천읍장을 지내고 민족중흥회 옥천지역회장을 맡고 있는 금효길(59)씨는 뒷밭에서 괭이질을 하다 만난 기자에게 “공직생활을 오래 해오며 조선일보를 많이 봐왔다”며 “이제는 친일 문제 때문에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이 있으면 내 손으로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 5만8천명의 옥천군은 `조선바보' 결성 이후 200여명이 독립군에 새로 가입해 언론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독립군들의 집요한 설득과 계몽의 결과, 이 지역 조선일보 구독자의 20%가 넘는 가구가 신문구독을 끊었다고 한다. 


특별취재반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1819190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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