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파행적 보도태도

[언론권력] 자사 이익따라 '춤추는 논조'

특정후보 '대통령 만들기' 눈살
92년 조선 정주영후보쪽"YS편든다"고발
97년 중앙 이회창후보 선거전략문건'파문'




“언론은 이제 권력과의 싸움에서 한층 원천적인 제약세력인 자본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1997년 12월15일 국민신당 당원들이 중앙일보사 정문 앞에서 <중앙일보>가 이인제 후보에 대해 불리한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위).
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2년 12월 통일국민당 당원들이 조선일보사 앞에서 <조선일보>가 정주영 후보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아래). /<한겨레> 사진

1991년 9월6일 김중배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소수'와 `약자'를 `비호'한다는 이유로 사주에 의해 편집국에서 쫓겨나면서 남긴 이 말은 10년이 지난 지금, 언론의 성격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선구자적 예언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신문이 이미 막강한 권력집단으로 변했고, 진정한 언론 자유를 위해서는 이를 억압하는 언론자본 곧 언론사주와 싸워야 한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족벌신문'들은 독재정권뿐 아니라 이른바 `문민정부' 시대를 거치면서도 권력적 위상을 더욱 확고히했다.

“회장님을 `남산'이라고 부르고 싶다. 낮의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분이 계셨지만, 밤의 대통령은 오로지 회장님 한분이셨다.”

92년 방일영 당시 <조선일보> 회장의 칠순 잔치에서 신동호 당시 <스포츠조선> 사장이 한 이 말은 <조선일보> 사보를 통해 공개되면서 언론계에 `밤의 대통령'이란 용어를 유행시켰다. 긍정적이든 부정적 의미든, 지금도 족벌언론 사주의 `위력'을 드러내주는 데 이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편집과 경영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한국의 언론상황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언론권력'의 행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적 행사를 통해서다.
“너네들 뭐 하는 거야! … 너네들, 내일모레면 끝이야. 국민회의·국민신당 너희는 싹 죽어, 까불지 마!”

97년 15대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12월16일 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이 술기운이 오른 불콰한 얼굴로 조선일보사 앞에서 내지른 말이다. 김 주필의 위압적인 폭언이 날아가 꽂힌 곳은 <조선일보>의 보도에 항의시위를 하고 있던 국민신당 당원들이었다. 김 주필의 이 취중폭언을 보도한 <기자협회보> 97년 12월20일치는 당시 상황을 묘사하며 “권력 감시라는 본연의 자세를 넘어 권력 만들기를 주도하겠다는 조선일보의 오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국민신당 당원들의 당혹감도 함께 전하고 있다.

92년 14대 대통령 선거는 김영삼 민자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정주영 국민당 후보가 주요 후보로 나섰다. 당시 <조선일보>는 정주영 후보를 `김영삼 후보의 표를 깎아먹는 존재'로 그렸다가 강력한 항의를 받는다. 류근일 당시 논설실장이 쓴 `정주영 변수'(92년 11월28일치)란 제목의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번 선거의 뇌관은 정주영 후보가 쥔 꼴이 됐다. 그가 만약 `굉장히 많이' 득표를 하면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 반면에 그가 `적당히 많이' 득표를 할 경우엔 그는 김영삼씨를 떨어뜨리고 김대중씨를 당선시킬 것이다.”

이 칼럼은 정 후보쪽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국민당은 당시 광화문 앞에 있던 당사에 “언론의 공정성을 저버리고 김영삼 대변지 노릇을 하며 국민당 음해에 앞장서고 있는 조선일보는 반성하라”고 쓴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또 <조선일보>를 허위·왜곡보도 혐의로 고발했다.
92년 12월15일 선거를 사흘 앞두고 터진 `부산 초원복집 사건'은 정부 고위층에 의해 자행된 선거사상 가장 악의적인 지역감정 선동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국민당에 의해 이뤄진 모의현장 `도청'을 부각시키더 중요시하는 듯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선거 당일인 18일치에서는 “`부산 사건'은 음해공작… 기필코 승리”라는 제목으로 김 후보쪽 주장을 소개했다. 그 기사의 일부는 이렇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17일 기자회견에서 시종 비감하고 분노에 찬 어조로 `부산 사건은 나를 떨어뜨리기 위한 공작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나는 이번 선거의 최대 피해자'라고 되뇐 뒤, `공명선거를 이룩하겠다는 나의 소박한 꿈에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다'고 통탄해했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앙일보>가 편파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해 12월 초 국민신당에 의해 폭로된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문건은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후보를 지원한다는 의혹을 부추겼다. <중앙일보> 내부에서 작성된 이 문건은 이회창 후보의 선거전략과 이미지메이킹 등에 대한 조언까지 담은 선거전략 보고서 형식으로 돼 있어 선거전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아가 회사 고위층의 선거개입 논란까지 불러왔다.

<중앙일보>는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12월15일 `대선 양자구도 압축'이라는 1면 머릿기사를 내보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국민신당은 이인제 후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편파적 제목 달기'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언론권력의 파행적 보도 태도는 선거 국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9월9일치 <동아일보> 1면 `대구·부산엔 추석이 없다'는 제목의 머릿기사는 많은 뒷말을 낳았다. 애초 전국 각 지역을 훑는 시리즈로 계획됐던 기사가 단발로 끝나면서 “영남 지역 독자 공략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구·부산 문제만 다룬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이날치 초판 기사에 사용된 `전국 지역별 부도율' 표에는 광주의 부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후속판에서 문제의 표를 아예 없애버린 것도 의혹을 샀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쪽은 “당시 금감위원장으로부터 대구경제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마련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대구경제 특집을 다루기로 했던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특정 사안을 놓고 때에 따라 보도태도를 달리하는 경우도 있다. 세무조사에 대해 99년 10월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구속될 당시 보였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 태도가 올해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에 와서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달라진 것은 대표적인 예다.

<조선일보>의 최근 국가보안법 개정 불가 의지는 여느 보수신문을 압도한다. 지난 1월15일치 사설(국보법이 인권과 무슨 관계가 있나)에서도 <조선일보>는 국보법이 “`최후의 보루'로서 상징성이 더 크다”며 “그런 상징적 장치를 집권측은 왜 그처럼 허물고 손대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있는가”라고 거칠게 따졌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 시절인 90년 2월18일치 사설은 이와 분위기가 다르다. “사실상 국가보안법은 불고지죄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법조문의 지나친 확대적용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그 모호성이 큰 문제”라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그간의 비판적 여론을 감안해 …확대해석의 요인만은 엄격히 시정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91년 5월 이 법이 일부 고쳐진 것은 사실이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비판 여론이 여전한 점에 비춰보면 <조선일보>의 최근 사설 내용은 그다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보도들과 관련해 해당 신문사 내부의 뜻있는 기자들의 `고뇌'도 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외부로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대해 김주언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선 기자들이 공정보도를 위해 공정보도위원회를 만들고 편집권독립을 위해 편집국장 임면에 관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90년대 들어 신문사들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특히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고용불안이 심해지면서 자사 신문의 논조나 방향에 대한 비판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며 “기자들이 편집권과 인사권을 장악한 사주들의 막강한 힘을 의식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체념적 분위기에 젖어든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전육 당시 편집국장(현 중앙방송 사장)은 “선거 직전 여론조사 결과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었다”며 “<중앙일보>는 기계적 균형보다는 선거 판세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쓴 기사였다”고 해명했다.

전 전 국장은 또 “이른바 `대선문건'도 사실 정치부의 한 기자가 보고한 내부 정보보고가 내부인사에 의해 의도적으로 누출된 것으로 마치 <중앙일보>가 이회창 후보진영을 돕기 위해 작성한 문건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과 류근일 논설주간은 여러차례 전화를 걸어 반론을 요청했으나 접촉이 되지 않았다.

특별취재반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121905056.html

[언론권력] 세무조사 '극과 극' 두 잣대

1999년 10월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탈세 사건과 최근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보도태도는 `카멜레온적 표변'이라고 할 만큼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99년 10월14일 중앙일보가 연일 특집으로 김대중 정부의 `언론탄압 사례'를 보도하자, “사회적 공기 포기…정부 보복 지면 만드나”라는 제목으로 당시 국민회의(현 민주당)의 주장을 충실히 알리는 등 `중앙일보 사태'와 관련해 양쪽의 견해를 공평하게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중앙일보쪽을 강경하게 비판하며 세무조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논평을 그대로 인용해 “홍 사장 구속 언론탄압은 부당”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는 언론탄압을 주장하기에 앞서 사주의 탈세행위와 언론자유를 스스로 지켜오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하라”고 보도했다.(99년 10월6일 2면) 당시 조선일보도 참여연대의 논평을 인용해 크게 보도했다(99년 10월6일 31면). 더 나아가 동아일보는 중앙일보를 옹호하는 한나라당에 대해서까지 “무책임한 구태 야당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99년 10월11일).


그러나 이번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언론사라도 특혜특권을 기대해선 안된다”던 동아일보는 “세무조사를 현정권이 악용하려 한다면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또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 정치적 목적 의혹 있다”(2월6일 1면 머리)는 기사를 비롯해 “언론제압용 세무조사 부당”(2월7일 1면 `이회창 총재 대표연설'), “언론장악 시나리오 의혹”(2월9일치 4면 해설), “언론사 세무조사반 점령군처럼 행세”(3월5일치 2면 해설)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의혹'과 `설'들을 그대로 대서특필했다.


조선일보 역시 “세무조사도 시기가 좋지 않다”는 칼럼을 게재하는 등 세무조사를 `강성정치'라며 견제하고 나섰다. 또 “특정 언론 겨냥하기 위해 나머지 언론 들러리 조사”(2월6일치 1면 `국회재경위 야당 주장'), “정치보복 영원히 추방, 세무조사는 언론제압용”(2월7일치 1면 `이회창 총재 국회연설'), “치밀한 준비 후 언론 공격하나”(2월9일 5면 해설 `국회 재경위 논란'), “세무·공정위 조사는 재집권 노린 언풍”(2월17일 4면 `국회 문광위 공방')이라고 연달아 한나라당의 주장을 제목으로 뽑아 세무조사를 비판했다.


그러나 두 신문은 언론단체들의 `세무조사 환영' 성명 등 수차례 나온 논평 등은 보도하지 않았다.


동아일보쪽은 이에 대해 “세무조사를 법에 따라 공정하게 하라는 취지의 사설을 포함해 모두 4차례 사설을 게재했다”면서 “내용 전체를 고려 않은채 논조가 달라졌다고 지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명했다.


특별취재반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1223160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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